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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북스 에세이

[셸리북스 에세이픽 8] 새라는 가능성_제리 작가

발행일 2022-09-21

 

새라는 가능성 / 제리

   

 

어제 본 구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담벼락에 누운 고양이의 자세이기도 했고, 입술 모양으로 오물거리는 뭉게구름 같기도 했지만,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았다. 이름은 매일같이 하늘인데, 날마다 다른 하늘이었다. 가능성이라는 말이 싫었던 이유도 그쯤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다 잘될 거라는 그런 말들이 미웠고, 결국엔 사라질 구름들이 왠지 ‘나’ 같았다. 그땐 나라는 가능성마저 천천히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눈만 뜨면 마음부터 바빴고, 무서운 마음이 자랄 것 같으면 자세부터 고쳐 앉곤 했다.

 

학교에 남은 이유도, 내가 바라는 것도 딱 하나뿐이었는데 그게 참 어려웠다. 한 번쯤 주목받고 싶었을 뿐인데 해를 넘길수록 그곳에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이십 대의 마지막 해, 집 근처 커피숍으로 매일 출근을 했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라고 더는 나에게 속지 말라고 소리치며 날마다 글을 썼다.

 

종이는 찢어지는 기분을 알까? 어제 쓴 원고를 벅벅 찢으며, 종이의 기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들이 잦았다. 종이는 나무였던 순간을 기억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다 보낸 적도 많았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쓰는 일보다 버려야 할 문장들을 고르는 게 더 어려웠다. 그런 날에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가곤 했다.

 

창밖은 환한데, 바깥을 바라보면 슬며시 마음 한 군데가 차가웠다. “너 계속 그러다간 더울 땐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운 날엔 더 춥게 일하게 된다”고 다그치던 친구를 떠올리며 애써 웃어봤지만, 한쪽 입꼬리는 늘 같은 자리였다. 그렇게 날마다 빠지지 않고 커피숍을 갔다. 출근하는 친구들처럼 알람도 맞추고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반나절 동안 같은 글을 수십 번 고치고 나면 눈이 아파왔지만 진짜 아픈 곳은 따로 있었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점심시간이 되면 아직 완성도 못한 글은 내버려 둔 채, 보고 싶은 이름들을 또박또박 눌러 담았다. 올해는 꼭 고마웠다고, 감사했다고, 사랑한다고, 덕분이라고. 실컷 고백해야지 생각하고 나면 제법 오래 웃을 수 있었다.

 

 

 

 

새라는 가능성

 

 

창살에 부딪치는 신음이 때론 새보다 멀리 날 수 있다

 

정점도 찍지 못하고 내려앉아

좁아진 하늘을 말아 쥔 새 몇 마리

제 온도를 뭉쳐 새장 밖으로 자신을 던진다

새들의 입김이 풀풀 날았고

구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옇게 뜬 하늘

우리의 새장엔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아

날지 못하는 새들을 보며

나도 어딘가에 길들여진 거라 믿었다

 

바람 한 스푼 퍼 먹이고 싶은 저녁

새장을 끌어안고 그네를 타면

오물거리던 부리와 덩달아 퍼덕이는 날개들

새들이 서로의 깃털을 비벼 공중에 걸어놓고

새장 구석구석 바람을 바르네 휘파람을 부네

벽지가 생기고 나니 여기도 제법 스스로 들어간 집 같았지만

공중을 붙잡은 채 말라버린 잎사귀를 기억해

섬세하게 흔들리다 쳐다보다

어느새 새들이 시들었다

 

우리는 공중에 박혀 흔들리는 그네 위에 앉아 있다

바람 묻은 발끝으로 동그라미 같은 문도 그렸다

저 문을 열고 새들이 날아갔으면 좋겠어

발 디딜 곳 없어 새처럼 종종, 걸으면 무릎이 아팠고

바람은 스스로 흔들릴 때만 새들의 무게를 나눠 갖는다는데

아직 구름도 품지 못한 나의 새장에서

새들을 물고

새라는 가능성이 높이 날았다

 

 

😺 셸리의 말 : '새라는 가능성'이란 시는 제리 작가가 등단을 꿈꿨을 당시 마지막으로 투고했던 시들 중 하나라고 하오. 한 번쯤 주목받고 싶었을, 그러나 그곳에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던 날들이 그대에게도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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