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PICK16

셸리북스 에세이

[셸리북스 에세이픽 6] 추석의 원고마감 테라피!_김민섭 작가

발행일 2022-09-07

추석의 원고마감 테라피!

 

작가들에게 추석이란 소중한 시간이다. 그해의 단행본 원고를 마감할 마지막 보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 ‘글빚’이라고 포장한 빚을 지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이번 추석에 뭐하세요?” 하고 물으면 아마도 “원고 마감해야죠.” 하고 답할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마감 못 한 원고가 2박3일의 연휴 동안 뚝딱 나올 리도 없지만 몸과 마음을 다한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것이다.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는 작가들이야 이미 마감을 모두 끝내두고 송편도 먹고 추석 덕담도 나누고 하겠으나 나의 추석은 늘 노트북 화면과 함께했다.

 

2018년의 추석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담당자에게 추석까지는 꼭 완성된 원고를 보내겠노라고 약속해 두었다. 11월에는 반드시 단행본이 출간되어야 했다. 담당 편집자에 따르면 그 책이 예정대로 나오지 않으면 회사에서 자신이 무척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편집장 앞에 서서 “이봐, 작가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아직도 원고가 안 넘어 오나!” 하고 질책 당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아아, 나 때문에 성실한 직장인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원고지 500매 분량의 글을 썼으니까 이제 200매를 더 쓰면 되었다. 그러나 2박3일 동안 완성하기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래도 추석인데 첫날엔 양가 부모님을 뵈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장인어른과 술도 한 잔 하고, 그렇게 어영부영 둘째날이 되고 나면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야 할 것이고,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고, 셋째날의 성묘는 어떻게든 빼 본다고 해도 나의 추석은 이미 그렇게 끝난 것이다. 원고는 20매나 쓰면 다행이겠다.

 

추석을 며칠 앞둔 나는 결국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에 이른다. 우선 아내에게 내가 단행본 원고 200매를 추석 동안 완성하지 못 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적당히 과장을 섞어가며 말했고, 어머니에게도 이번 추석에 우리 가족은 차례도 성묘도 가지 못 할 것이라고 말해 두었다. 어차피 나의 인세 수입이 생활비의 전부인 아내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어머니는 조상님이 대신 글을 써 주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아내가 그래도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시댁에 가보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해서 “내 집안인데 나도 없이 당신이 왜 가.” 하고는, 편히 쉬라고 했다. 사실 아이 둘을 돌보는 2박3일은 휴식이 아니라 노동이나 전쟁 같은 것임을 잘 알고 있으나, 나도 나의 노동과 전쟁을 시작해야 했다. 어머니도 시댁에 가서 전을 부치고 송편을 빚는 자신의 노동을 할 것이다.

 

내가 찾은 곳은 경기도에 자리한 어느 큰 찜질방이었다. 노트북과 갈아입을 속옷 몇 개만 챙긴 채, 나는 ‘OOO 온천’이라는 이름의 찜질방으로 갔다. 인터넷 검색과 지인 추천 등을 받아 무척 고심해서 고른 곳이었다. 호텔에서 글 쓰는 작가, 도서관에 입주해서 글 쓰는 작가, 절에서 글 쓰는 작가, 등등, 여러 작가들이 있겠으나, 찜질방에서 글을 쓰는 작가는 나도 들어 본 일이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가 2박3일 동안 글을 쓸 만한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

 

나의 전략은 이러했다. 찜질방의 카페 같은 휴게실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쓴다. 목이 마르면 매점에서 식혜나 미숫가루 같은 것을 사서 마신다. 중간중간 불가마나 자수정방 같은 데서 찜질을 하면서 땀을 빼고, 다시 돌아와서 글을 쓴다. 잠이 오면 얼음방에 들어가서 정신을 차리고, 계속 글을 써 나간다. 배가 고프면 매점에서 미역국이나 제육볶음 같은 음식을 먹는다. 이곳의 제육볶음이 맛있다는 리뷰가 있었다. 잠이 오면 굴러다니는 매트와 베개를 가져와서 되는 대로 잠을 자고, 일어나면 사우나에서 씻고 나와서, 다시 휴게실에 가서 글을 쓴다. 그렇게 2박3일을 지내고 나면 아마도 200매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빨리 원고를 마감하면 큰집에 차례를 지내러 갈 수 있을 만한, 경기도 안양과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명절에 대처하는 작은 양심도 함께 챙겼다.

 

2018년 추석 첫날 오전에, 나는 황토색 상하의를, OOO온천이라는 글자마저 사람들의 땀과 세탁 세제에 찌들어 희미해진 그 옷을 입고는, 찜질방에 입장했다. 그러나 나의 계획은 처음부터 조금은 어그러지는 듯했다. 명절을 맞이해 찜질방을 찾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여기저기 아이들이 오랑캐처럼 뛰어다녔고 운동장처럼 넓은 찜질방의 중앙은 여기저기 눕거나 앉은 사람들로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아아, 여기가 난민촌이고, 나는 오갈 데 없고 해야 할 일만 있는 난민이구나. 그러나 다행히 휴게실은 정부군도 오랑캐도 없는 비무장지대 같은 곳이었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스탠딩 의자처럼 된 자리가 4개 정도 있었고, 노트북을 충전할 콘센트도 알맞은 자리에 있었다.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올 만큼 전망도 참 좋았다. 사람들은 TV도 푹신한 의자도 없는 이곳을 굳이 찾지 않았다. 가끔 책을 읽으려는 젊은 사람들이 오갈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곧 휴게실의 좋은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펴고 원고를 마감해 나가기 시작했다.

 

원고는 작가가 아니라 마감이 완성한다는 말이 있다. 실로 그러하다. 정말로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나면 왜 이런 소재와 문장이 이제야 나오는 건가 싶을 만큼 쏟아져 나온다. 나는 첫날 저녁까지 70매의 원고를 쓰는 데 성공했다. 대략 A4용지 10장 내외의 분량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창밖이 어둑해져 있었고 배가 고팠다. 무엇보다도 나의 허리가 ‘나에게 왜 이러냐, 어서 어디에든 가서 좀 누워라. 이러지 않았잖느냐.’ 하고 척추에서부터 마음의 소리를 보내왔다. 아아, 죄송합니다 디스크 님, 이제 좀 쉬겠습니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소금방에 가서 누웠다. 그리고 좋아하는 웹툰을 보면서, 그 굵고 따끈한 소금 알갱이들에 나의 몸을 맡겼다. 사람들이 적당히 빠져나가고 나면 몸을 두어 바퀴 데굴데굴 돌리면서 골고루 찜질이 되게 했다. 나는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었으나 20분 넘게 그러고 있으니 옷이 다 젖었다. 웹툰의 정주행도 그럭저럭 끝내고 밖으로 나오고서는, 얼음방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의 몸에서는 수증기가 올라왔다. 아이들이 다 어디에 있었나 했더니 얼음방에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는 오오,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한여름의 소독차가 된 기분으로 그들과 최대한 먼 곳에 조신하게 앉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에 나의 친구들을 소독차가 올 때마다 그 연무 속을 와, 하고 뛰어다녔고 그 차를 ‘방구차’라고 불렀다. 나는 그들에게 왜 소독차를 따라다니는지 그리고 왜 방구차라고 부르는지 물었지만 다들 이유가 없다고 했던 것 같다.

 

얼음방에서는 1분 넘게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이제 매점으로 간 나는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아아, 역시 리뷰라는 집단지성은 대개 믿을 만한 것이다. 전문 가정식 백반 식당도 아닌 곳에서 이렇게 불맛이 나는 쫄깃한 제육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원고를 쓸 만큼 쓰고, 소금방과 얼음방을 번갈아 가며 덥히고 식혀진, 그 마음과 몸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간다. 내 인생 최고의 제육볶음 맛집은 OOO온천의 매점이었노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완벽한 한 끼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사람들이 치킨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한민국 찜질방의 저녁은 이처럼 완벽에 완벽을 더해 정말이지 무결한 것이다. 여기는 어쩌면 내가 언젠가 가보는 것이 소원인 독일의 옥토버페스티벌, 그 맥주 축제의 현장보다도 더욱 행복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만 맥주를 주문해서 500cc 두 잔을 먹고 말았다. 그 이후에는 나도 잘 모른다. 갑자기 “추석 특선 영화를 찜질방 내 상영관에서 상영하오니 이용객들께서는 관람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나는 무엇에 홀린 듯 거기로 갔을 뿐이고,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가족들과 함께 그 영화를 보았다. 송강호와 외신기자가 군인의 검문에 걸렸을 때 엄태구가 “야, 그냥 보내 줘....” 하는 장면에서는 그만 감정이 복받쳐서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를 잊을 지경이었다.

 

다음 날, 나는 찜질방의 수면실에서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이미 점심이 다 되어 있었다. 아니, 저어, 오늘도 70매를 써야 하는데. 그때 방송으로 “00번 손님, 지금 즉시 카운터로 오시기 바랍니다.” 하는 방송이 나왔다. 00번은 바로 나였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카운터로 가자 직원이 “아니 24시간에 넘었는데 여태 계시면 어떡해요. 이것저것 많이 드셨네. 결제하고 다시 입장해 주세요.” 하고 말했다. 24시간 이상 머물 것이면 미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사과를 하고, 하루치를 결제하고, 새로운 황토색 찜질복을 받아서, 다시 입장했다. 아아, 내가 맥주를 왜 마셨을까. 아아아, 내가 추석 특선 영화를 왜 봤을까. 나는 매점에 가서 후회와 자책을 조미료삼아 미역국 백반을 먹었다. 점심이 지나자 찜질방을 전세 낸 아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그들은 이제 휴게실까지 들어와 뛰어다녔다. 찜질방이 이처럼 사랑받는 추석의 공간인 줄, 이전엔 미처 몰랐다.

 

그렇게 2박3일의 추석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소금방과 얼음방을 아마도 50번쯤 왕복했다. 나중에는 내가 원고 마감을 하러 온 건지 새로운 방식의 수련을 하러 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8번의 식사를 하는 동안 제육볶음을 7번, 미역국을 1번 먹었다. 5번쯤 사우나를 했고 그때마다 천 원을 추가로 지불하고 옷을 바꾸어 입었다. 그리고 원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밤을 거의 샌 덕분에, 나는 200매를 완성하고야 말았다. 집에 가서 몸무게를 재 보니 3일 동안 3kg 정도가 감량되었고, 얼굴에서도 전에 없이 빛이 나게 되었고, 몸이 전에 없이 가벼워졌다. 아아, 이건 굳이 이름 붙이자면 원고 마감 테라피! <훈의 시대>라는 나의 네 번째 책은 그렇게 2018년 11월에 다행히 잘 출간되었다. 사람들이 매년 단행본을 어떻게든 1년에 한 권씩 써내고 있다고, 비결이 뭐냐고 물어서 나는 “아, 그게 찜질방...” 하고 답하다가, 아닙니다 열심히 썼습니다, 하고 얼버무리기도 했다.

 

그때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다시는 이런 추석을 보내지 않아야지, 남들처럼 성실한 작가가 되어서 편집자에게도 제 원고는 걱정하지 마시고 평안한 추석 되시라고 덕담도 해야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1년의 추석도 별로 다르지 않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집에 머무르면서 원고와 기획안 같은 것을 마감하고 있다.

 

3년 전의 찜질방을 떠올리면 소금방과 얼음방을 왕복하던 삼십 대 중반의 내가, 해맑게 젊었던 내가, 그 뜨거움과 차가움에 바쁜 몸과 마음을 맡겼던 애틋한 내가 문득 나타난다. 지금은 그렇게 할 만한 뜨거움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아빠는 찜질방에 있을게 하고 말할 만한 차가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소금도 얼음도 아닌 채로 적당해 미지근해진 나의 온도는 이제 어디에서든 36.5도에 머무르고 있는 듯하다. 2021년의 추석은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원고를 마감하고 기획안을 쓰고, 그러다가 8살 아이의 술래잡기를 해 달라는 말에 ‘어쩌면 저 술래잡기라는 단어를 다시 듣기 힘들지도 몰라, 그러니까 놀아주어야지.’ 하고 노트북을 덮고 일어나거나 하며 보내고 있다. 2022년의 추석에는 어떠한 온도로 살아가게 될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지금의 온도도 꽤 괜찮았다고 추억하는 추석이 되길.

 

 

😺셸리의 말: 그대 좋은 추석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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