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PICK16

셸리북스 에세이

[셸리북스 에세이픽 15] 그 고양이는 괜찮을 거야_오은 작가

발행일 2022-11-23

 

여느 때처럼 산책을 했다. 여느 때와는 달리 마스크를 낀 채였다. 얼굴의 일부분을 가리고 있으니 눈이 앞을 향하고 있는데도 뭔가 놓친 것은 없는지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느 토요일과는 달리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여느 겨울날처럼 춥고 건조했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걸었다.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땐 자연스럽게 다른 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나무도 올려다보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 입을 헤벌리기도 한다. 상점 앞에 놓인 입간판 문구도 유심히 들여다본다. 겨울에도 어떻게든 초록을 유지하고 있는 풀들을 지긋이 바라보기도 한다. 부디 한 줌의 온기가 전해지기를 바라며.

 

그리고 고양이. 대문 앞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내 옆을 잽싸게 지나가는 고양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고양이, 혀를 빼물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고양이, 공원 산책로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고양이… 하얗고 까맣고 귀여운 것도 모자라 날렵하며 다가올 것 같으면서도 절대 빈틈을 내주지 않는.

 

오늘은 일곱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다. 영동1교를 건널 때 만난 고양이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다리 한가운데서 고양이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고양이가 바라보고 있던 곳은 양재천이었다. 배가 고픈지 자꾸 갸릉갸릉 소리를 냈다. 문득 송찬호의 시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사, 2009)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나는 내어줄 것은커녕 접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야속하다는 듯 고양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다리를 건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영춘화(迎春花)를 보았다. 영춘화라는 이름은 검색을 통해 알아냈다. 아직 개나리가 필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 검색 창에 ‘개나리와 비슷한 노란 꽃’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었던 것이다. 봄을 맞이하는 꽃답게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고 했다. 영춘화 아래서 봄을 기다리듯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검색을 해도 고양이의 마음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시드니 스미스가 그리고 쓴 『괜찮을 거야』(김지은 옮김, 책읽는곰, 2020)를 읽었다. 여운이 긴 그림책이었다. 한 아이가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도시를 헤매는 내용인데,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방식이 실로 인상적이었다. 고양이가 그런 것처럼, 섣불리 이해받지 않겠다는 발걸음처럼.

 

세 장을 넘겨야 등장하는 첫 문장은 이렇다. “나는 알아, 이 도시에서 작은 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이것은 주인공인 아이와 아이가 잃어버린 고양이 둘 다에게 해당되는 문장일 것이다. 작은 존재가 더 작은 존재를 향하는 이야기를 보고 어떻게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영동1교에서 마주친 고양이를 떠올리며 “괜찮을 거야”라고 나직이 발음해보았다.

 

고양이를 만나는 마음과 고양이를 찾아 헤매는 마음은 분명 다를 것이다. 설렘과 간절함의 중심에는 똑같이 요동(搖動)이 있지만, 전자의 요동이 맥(脈)이라면 후자의 요동은 맥박(脈搏)에 가깝다. 맥이 풀려도 맥박은 뛴다. 어쩌면 나는 상실이 두려워 무의식적으로 반려(伴侶)를 거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봄이 오고 있다. 봄의 한가운데에도 고양이가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봄에 만날 고양이를 떠올린다. 공터에 봄볕이 쏟아지고 배부른 고양이가 바닥을 뒹구는 장면을 떠올리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기에 상상할 수 있다. ‘아직’이라는 말은 미완이지만, ‘언젠가’ 올 시간이기에 일부러 완성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나저나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날이 올까? 더군다나 내가 고양이를 이해하는 날이 올까?

 

😺 셸리의 말 : 이 도시에선 모두가 작은 몸으로 살아가는 듯하오. 그래서 함께 살아가야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소.

 

✍️작가의 말 : 이 글을 쓰기 전에 이수명의 시집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문학과지성사, 2004)를 다시 읽었다. 어떤 도움을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집을 다 읽고 나는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를 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보는 일, 그리고 보는 일을 하는 대상을 보는 일, ‘물끄러미’의 마음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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