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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북스 에세이

[셸리북스 에세이픽 12] 작가가 되는 일에 대하여_정지우 작가

발행일 2022-10-26

작가가 되는 일에 관하여

 


작가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할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타자' 이영도이다. 그는 언젠가 자신이 '작가' 같은 거창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서, 자신은 어디까지나 타자기를 두들기는 타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스스로도 항상 '타자'나 '글쟁이'라고 칭했고, 자기 자신을 저자나 작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영도를 알고 그의 소설을 열심히 읽던 청소년기 무렵,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의 대부라 불리는 그의 겸손함이 무척 인상깊게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일이십 년쯤 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가 '작가'라 생각하는 사람은 소설가 최인호 정도라고 말했던 듯하다. 그에 힘입어서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특유의 '겸손함'에 대한 문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요즘에는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를 글쟁이라 칭하곤 한다.

 

한편, 근 몇 년간 내가 가장 자주 '작가님'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주로 방송작가들이었다. 라디오에 일 년 정도 패널로 참여하면서도, 매주 연락을 주거나 먼저 만나는 사람은 늘 담당 라디오 작가였다. 한번은,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패널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가장 많이 소통하던 사람들은 작가들이었다. 메인작가가 있었지만, 주로 이야기하게 되는 건 보조작가들이었다. 보조작가들은 방송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다 하는 것 같았다. 방송의 구성과 대본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촬영할 일이 있을 때는 그곳의 식당, 숙소, 동선, 전체적인 스케줄 등을 모두 작가들이 담당했다. 패널들을 안내하고 챙기고 불만을 들어주는 것도 모두 작가의 몫이었다.

 

그 외에 내가 만나는 작가들이란, 대개 책을 몇 권쯤 쓴 사람들이다. 그럴 때도, 물론, 꼬박꼬박 작가님이란 명칭을 붙여 부른다. 그러나 또 시인이나 평론가, 소설가한테는 작가라고 하기보다는, 시인님, 평론가님, 소설가님이라고 부르곤 한다. 책을 몇 권 썼더라도, 교직에 있다면 선생님이나 교수님이라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다른 직업이 있다면 대개 그 직업을 우선하여 부르고, 작가님이란, 작가 외에 다른 직업이 없는 이들에게 부르는 명칭에 가깝다. 당연히 나도 불릴 일이 있으면 주로 작가님으로 불린다. 종종 평론가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평론가라는 명칭을 달고 출연하고 기고할 때 정도로 한정적이다. 아무래도 나는 작가가 맞나보다, 생각한다.

 

사실,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하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스스로 겸손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로서는 작가라는 게 그리 대단한 명칭이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듯하다. 작가란,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것 외에는 뚜렷하게 부를 만한 이름이 없는 사람이고, 또 한편으로는, 온갖 잡다한 일들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작가들이 글만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글을 쓰면서 사업을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학생을 가르친다. 실제로 보통 작가들은 글을 써서 버는 돈보다, 부수적인 일로 버는 돈이 더 많다. 글을 쓰고 책을 쓰면 작가가 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작가가 되면, 강연을 하고 수업을 하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렇게 이제 와 작가가 된 마당에, 예전의 '작가'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과연 작가에서 더 겸손할 만한 어떤 명칭이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과거에는 글을 쓸 수 있는 지면이 무척 한정되어 있었고, 글을 써서 발표를 하거나 책을 내는 일도 일종의 특권이었고, 그들은 그런 권력과 발언권 속에서 멀리 있는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쓰는 시대가 되었다. 독립출판물이나 단행본 종수도, 출판사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콘텐츠들에는 항상 작가가 기본으로 필요하기도 하고, 저마다 각자의 SNS에 끊임없이 글을 쓰는 시대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작가란 대단하고 멀리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요리를 하거나 운전을 하는 것처럼 가까이에 일상적으로 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사실, 자신을 작가라 칭하는 것보다도 '글쟁이'나 '타자'라 칭하는 게 어쩌면 더 특별한 존재임을 뜻하는 명칭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모두가 작가가 되어가는 시대야말로, 어쩌면 더 좋은 시대라 믿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은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렇게 표현하고, 그로써 누군가 들어주고, 또 서로 공감하는 일이란 모든 사람에게 마땅히 주어져야만 하는 권리인 것이고, 특정인들만이 특권으로 향유할 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아마도 모든 사람이 서로의 작가이자 독자가 되어주는 시대야말로, 그렇지 않은 시대보다 더 인간다운 시대라고 생각한다. 사실, 작가란 모든 사람들이기도 하며,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작가가 되어가는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어쩌면 모두에게 더 나은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정지우 작가의 말
작가에 대해 쓰고 나서, 작가의 말을 쓴다는 것이 약간 묘한 기분이 드네요. 모든 사람이 작가라면, 이 글을 읽고 전해주시는 말들도 작가의 말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늘 제가 쓰는 글을 읽고 들려주시는 말들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읽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작가로서의 나와 당신이 격려받으면 좋겠습니다. 아빠나 엄마로서의, 일상의 예술가나 노동자로서의, 사랑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으로서의 우리가 응원받고 위로받아 마땅한 것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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