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PICK16

셸리북스 에세이

[셸리북스 에세이픽 9] 바다 앞에서_서민재 작가

발행일 2022-09-28

바다 앞에서 / 서민재

   

 

바다에 대한 에세이를 바다 앞에서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바다다.

 

위의 두 문장을 써 놓고 한동안 여기에 손대질 못했다. 바다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의 첫머리를 저 문장들로 열고 싶었기 때문이다. 굳이 풀어서 말하자면 바다에 가지 못한 것이 첫 번째 문제였고, 하나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두 번째 문제였고, 첫 번째 문제와 두 번째 문제를 핑계로 글을 쓰지 않은 것이 세 번째 문제였다.

  

*

 

나는 바다를 그리워하며 어느 내륙 작은 방에 앉아있다. 날은 꽤 덥고 습해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쯤 바다는, 일렁일렁하며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다가올 피서 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분주한 손길과 별 이유 없이 바다를 찾은 사람들의 유유한 발길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향수라든지 휴가라든지 꼭 바다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별 이유 없이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한 번도 바닷가에 살아본 적 없고 휴가는 저 멀리 있으므로, 또한 바다에 대한 에세이를 육지에서 쓰기로 마음먹었으므로, 지금 당장 내게 바다는 별 이유 없이 가야만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바다가 그립다는 말이다.

 

바다를 못 본 지 삼 개월이 지났다. 만약 누군가가 그동안 바다에 갈 시간이 그렇게 없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말끝을 흐릴 것이다. 그간 바다에 가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계산적’이기 때문이었다. 오고 가는 데 드는 시간과 체력을 계산했었다. 차라리 주말에 집에서 잠이나 더 자는 게 남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를 생각하니 집에 있는 편이 더 나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는 동안 선선한 날은 지나갔고, 기름값은 더 올랐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계산적인 사람이다. 아무런 목적이나 의도 없이, 순수하게 무엇을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내 말과 행동이 가져올 득실을 따지지 않고 살았던 적,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세상을 대했던 적이 근래에 있었던가? 며칠 전에 바다에 가려 했던 것도 글 하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무목적 無目的 은 아니었다.

 

사실 그 전부터 바다에 가려고 했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가자고 했었다. 그러나 가지 못할 이유는 계속 생겨났다. 누구의 결혼식, 누구의 초대, 쌓여있는 집안일, 몸이 피곤하다는 소리, 시간이 없다는 말들… 떠나지 못했기에 알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들은 계속 생겨날 거라는 것을. 일단 떠나지 않으면 바다에 닿지 못한다는 것을. 끊임없는 핑계와 변명은 바다에 가지 못한 나를 계속 합리화할지도 모른다.

 

눈앞에 없는 바다를 떠올려 본다. 혼자서 출렁이는 바다를, 거세게 때로는 상냥하게 춤추는 바다를, 그럼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바다를. 계산적인 사람은 바다에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다.

 

 

 

😺 셸리의 말 : 바다가 과연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에게 묻고 싶소. 어떻게 하면 당신을 닮을 수 있느냐고, 그리고 당신은 어떠한 계산을 하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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