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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북스 에세이

[셸리북스 에세이픽 11] 한 시절 나의 돌다리였던_정지우 작가

발행일 2022-10-12

 

한 시절 나의 돌다리였던


삶에서 딱 한 번, 언젠가 고양이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고양이와의 동거는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시작되었다. 처음 만났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또 처음으로 휴학을 하고 홀로 시작하던 가을에, 나는 조금은 불안하고 들떠 있었다. 처음 시간을 내 의지대로 쓰겠다는 마음에 들떠 있었고, 그 나날들을 홀로 보내야 한다는 마음에 다소 불안정하고도 위태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휴학을 결심했던 가장 큰 이유라면, 마음껏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를 일년 반쯤 다니면서, 틈틈이 책을 읽거나 글을 썼지만,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점점 늘어갔다. 과제로 내주는 책을 읽고, 레포트를 쓰고, 시험 공부를 하다보면, 일년의 절반 이상은 금방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반자의적으로 이끌려 가면서 시간만 쓰다가는, 영영 나의 삶이랄 것을 가지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책들을 쌓아놓고 질릴 때까지 읽고 싶었고, 지칠 때까지 쓰고 싶었고, 아무 의미도 없는 삶 속에서 자유롭게 놓이고 싶었다. 그렇게 첫 자유이자 불안을 선택했다.

 

고양이를 만난 건 그런 가을의 한가운데였다. 여느 날처럼, 늦은 밤, 나는 노트북을 켜놓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대단한 건 아니었고, 그 시절에는 주로 잡념들이나 옛 기억, 그날 본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들에 관해 닥치는 대로 날밤 새워가며 쓰곤 했다. 그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 문득, 내가 한참 전부터, 이를테면,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동안 계속하여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소리는 무척 가까워서 평소랑은 달랐는데, 그 가까움이 어딘지 낯설게 느껴져서, 아무런 기대나 생각도 없이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바라보며 울고 있는 어린 삼색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약간 당황하고 있는 사이, 고양이는 열린 문틈 사이로 집안에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뭐랄까, 그 몸짓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 느껴져 차마 어떻게 말려볼 수도 없었다. 나는 어떡해야 하나 당황하다가, 집에 있던 참치캔을 하나 따주었다. 그랬더니 고양이는 현관에서 캔 한 통을 비웠고, 나갈 생각은커녕, 방안까지 들어오려고 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고양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샴푸로 적당히 씻겼고, 고양이는 그날 밤부터 내 침대에 올라와 동침을 시작했다. 나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에는 곧장 동물병원에 갔고, 이런저런 검사와 예방접종을 했다. 모래와 사료, 화장실 같은 것도 구매했다. 의사 말로는, 귀 한쪽이 찢어져 있다면서, 아마 길에서 다른 고양이와 싸우다가 그렇게 된 듯하고, 그래서 어디라도 피난처를 찾으려 울고 있었던 것이리라고 했다. 태어난 지도 몇 개월 되지 않았다면서, 이빨도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당시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구조하고 입양보내는 일을 하던 어머니에게 전화했고, 어머니는 당분간 입양처가 구해질 때까지 내가 돌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렇게 내 불안한 자유의 시절은 고양이 '들'과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어쩌면 각자의 피난처를 찾아 서로를 만난 것만 같았다.

 

고양이와 살아가는 일은 신비롭고 새로웠다. 어릴 적부터 강아지는 키워왔지만, 고양이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만져보고 바라보는 것 자체가 거의 처음이었다. 고양이는 내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으면, 책상 위로 뛰어 올라 내 팔에 기대어 그르릉 소리를 내곤 했다.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이불 속에 자리를 잡았고, 잠을 잘 때도 내 다리 옆을 좋아했다. 한낮에는 창문에서 바깥 구경하는 걸 즐겼고, 비닐봉투 같은 것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혼자 노는 것도 대단히 잘했다. 사실, 그 시절의 절반 이상은 방에서 홀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보냈는데, 그럼에도 내 방안이 외롭거나 쓸쓸하기보다는, 어떤 몽롱한 충만감으로 더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런 묘한 안정감은 아마도 고양이 '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을 지나보내면서, 나는 묘한 삶의 진실 같은 것을 하나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삶이란 누군가를 구하거나 구해지는 일들로 이어지며, 그렇게 여러 시절들이 서로의 둥지 같은 것이 되어주는 누군가들을 건너가며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다. 돌이켜보면, 삶의 매시절에는 어떤 손길들이 있었다. 그 손길들은 때론 연인이거나 친구, 동료이거나 그저 낯선 사람이기도 했는데, 일방적으로 나를 구해냈다기보다는, 맞잡음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견디며 의지하는 일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짧은 나날들의 인연들은 인생 전체에서는 '사소한 인연'으로 치부되기 쉽지만, 사실 그 시절에는 전부였던 것이고, 그렇게 매시간마다 전부였던 돌다리들을 건너 이곳까지 왔던 게 아닐까 싶다. 그 중 어느 하나의 돌덩이가 없었다면, 결국 이곳까지 이르는 돌다리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고양이 들은 내가 발딛고 설 수 있었던 한 시절의 돌덩이였다.

 

군훈련소로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올 때쯤, '들'을 입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그는 캐나다인이었는데, 들의 사진을 보고는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자신이 이번에 출국할 때 꼭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들을 작은 가방에 넣어서 지하철을 타고 인천공항까지 갔다. 젊은 서양인 남녀는 고양이를 꺼내 안아보고는, 너무나 귀엽고 예쁘다면서,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의 뒷모습과 함께 멀어지던 고양이 가방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나의 한 시절도, 내가 사랑했고, 나를 구해냈던 어느 돌덩이도, 모든 시절과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내게서 떠나갔다. 평생 잊힐 것 같지 않은 방 안의 어떤 풍경을 남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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