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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리북스 에세이

[셸리북스 에세이픽 10] 난생처음 구두를 신은 날_김해뜻 작가

발행일 2022-10-05

 

난생처음 구두를 신은 날

 

 

앉을까, 말까.

 

힐끔힐끔 빈 좌석을 바라보면서 고민에 빠진다. 난생처음 신어보는 구두에 발이 혹사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앉으면 그래도 좀 덜 아플 것 같은데, 문제는 입고 있는 옷이었다. 잠깐 앉아가는 새 아침부터 열심히 다린 정장 치마에 주름이 생길 게 염려스러웠다. 문가에서 살짝 비켜선 채로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두 역을 지나칠 즈음에야 미련을 떨치고 고개를 돌렸다. 그냥 서서 가자. 금방 도착하는데, 뭘.     

 

고민을 지워내고 휴대폰을 바라본다. 화면 속에는 밤새 작성해온 예상 질문 목록과 답변이 적혀있었다. 나는 눈으로 재빨리 질문을 훑고, 입으로 답변을 줄줄 외우기 시작했다. 특히 자신 없는 영어 자기소개를 중점적으로. 정신없이 외우다 지하철이 멈춰 서면 역을 확인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걸 보고선 또 휴대폰에 코를 박는다. 열심히 외우기야 하겠지만 제발 이런 건 안 시켰으면 좋겠다고 소원도 틈틈이 빌며.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 나는 여전히 불편한 발을 이끌며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 어색하게 내딛는 걸음에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뒤따른다. 무엇 하나 익숙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긴장으로 굳어진 손을 맞잡아 꾹꾹 눌러주기도 하고, 허리를 쭉 펴고 심호흡을 하기도, 가지런히 모은 발끝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물론 안정 효과는 별로 없었다. 면접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새삼 마스크가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잔뜩 얼어버린 표정을 그나마 반이라도 감출 수 있어서. 앞 순서였던 면접자가 밖으로 나왔다. 이제 내 차례구나. 나는 마지막으로 주먹을 한번 꽉 움켜쥐고 소리 없이 기합을 넣었다. 할 수 있다, 하면 한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발톱이 아파왔지만, 내색 않고 씩씩하게 걸어갔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생각보다 길었던 면접을 마치고 나오니, 마침 회사 점심시간이었는지 직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틈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어쩐지 민망함이 몰려들었다. 자유로운 복장을 한 이들 사이에서 홀로 정장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이 유난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휴대폰을 하는 척 고개를 숙인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와 통화를 했다. 면접은 어땠냐는 물음에 ‘그냥 그랬지, 뭐’하고 성의 없는 대답을 했다. 사실 망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괜히 입 밖으로 꺼냈다가 부정 탈까 봐 에둘러 표현했다. 엄마, 요즘은 그런 말도 있어. 무슨 말? 면까몰. 그게 무슨 뜻인데? 면접은 까보기 전까지 모른다고. 엄마는 별말이 다 있다면서 깔깔 웃었다. 이어폰을 타고 넘어오는 웃음소리에 그제야 남아있던 긴장이 탁 풀린 나도 함께 웃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구두를 벗어 던지고 손과 발부터 씻었다. 몇 시간 사이에 퉁퉁 부어오른 발을 보며, 오늘 하루 참 고생 많았다고 속으로 속삭였다.     

 

같은 무게라도 버티는 면적이 좁아지면 더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오늘 내가 구두를 신으며 유난히 힘들었던 것은, 보다 좁은 면적으로 내 무게를 온전히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무게는 단순히 체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 내가 품고 있는 온전한 나의 가치, 무거운 부담감, 불안감, 또는 어떤 기대와 설렘으로 뒤섞인 마음의 무게, 그 모든 것들을 두 발로 지탱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새삼 나의 무게가 이토록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고, 동시에 안도했다. 이만하면 작은 바람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겠구나, 꺾이지 않고 더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지금은 조금 아픈들, 잠시 휘청거린들 해도.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은 이렇게 불편하고 아팠지만, 다음에는 조금 덜할 것이라고. 신발이라는 건 원래 신을수록 길드는 법이니까 말이다. 슬리퍼를 신어도 발등이 까지고, 쪼리를 신어도 발가락 사이가 아프기 마련이다. 아무리 잘 맞는 운동화를 신어도 며칠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제 발에 맞게 늘려야 한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구두를 신었고, 그래서 조금 걸음이 어색했고, 또 발이 평소보다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음번에는 보다 나아질 것임을 알고 있다. 더 씩씩하게 잘 걸을 테고 더 오랜 시간 걸을 수 있겠지. 나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 가장 고생한 내 두 발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처음은 누구나 힘든 법인데, 애써줬다고. 잘했다고.     

 

우리들은 저마다의 무게를 지탱하며 살고 있다. 가끔은 구두, 가끔은 운동화, 가끔은 슬리퍼를 신고. 또 가끔은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인 상태로. 어떤 날은 각자의 무게를 잊고 살고 또 어떤 날은 각자의 무게를 배로 체감하면서 산다. 그러한 과정에서 작은 생채기나 근육통을 얻기도 한다. 그제야 우리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수고한 두 다리와 두 발을 알아준다. 뒤늦게 수고한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당신의 두 발이 지탱하고 있는 무게가 가벼운지 무거운지 알 수 없다. 당신이 아무리 그 무게에 대해 설명해줘도 나는 함부로 이를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무게를 겉만 보고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무게를 알아줄 수도, 나누어 들어줄 수도 없지만. 또 각자의 두 발이 되어줄 수는 없지만. 서로의 발이 조금은 더 편할 수 있게, 길을 닦아놓을 수는 있다. 미끄러지지 않게 푹신한 매트를 깔아주거나 넘어지지 않게 돌부리를 걷어내 줄 수 있다. 걸어가다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를 놓아주거나, 목을 축일 수 있게 물을 놓아줄 수도 있다. 길을 헤매지 말라고 이정표를 놓아줄 수도 있고, 가끔은 신발을 벗어줄 수도 있다.      

 

또 반창고를 선물할 수 있다. 당신이 새로운 신발을 신을 때면 뒤꿈치가 까지지 않게끔, 혹 상처가 나거든 덧나지 않게끔, 나는 언제든 나를 위한, 그리고 당신을 위한 반창고를 준비해놓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사소한 손길로 하여금 당신이 조금 더 오래 걸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구두를 신고 나선 나의 하루는 무척 고되었고, 피곤했고, 힘들었지만, 또 무척 쓸쓸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견뎌냈음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나는 오늘, 또는 언젠가, 편하지 않은 신발을 신고 나선 당신의 씩씩함에도 박수를 보낸다. 애써줬다고. 잘했다고. 서로 각자의 무게를 견뎌내는 오늘이, 외롭지만은 않기를 바란다고.

 

 

김해뜻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김해뜻입니다. 첫 글로 이렇게 인사를 드리네요.

 

글을 쓰기 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어떤 글로 여러분과 함께하면 좋을지에 대해서요. 좀처럼 답을 찾지 못한 찰나에, 생각의 방향을 조금 달리해 지금 제가 듣고 싶은 말들을 떠올려봤어요. 그러다 여러분과 같은, 또는 언젠가 여러분이 경험했던 취업 준비생의 입장에서 글을 한 편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누구보다 외로운 시기를 보내는 저에게, 또 여러분에게 반창고 하나를 붙여주고 싶었거든요.

 

첫 글이라 아무래도 좀 어색한 감이 있는데요. 신발을 길들이듯, 우리 마음에 꼭 맞는 편안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할 테니 조금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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