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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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5

송재학 시인님의 부계가 포항이었군요. 제 모계는 인천이에요.

이수아2021.11.27 21:59조회 수 931추천 수 1댓글 0

 

🐱 셸리의 말

형산강 하구가 자신의 부계라는 송재학 시인의 말을 이 고양이는 재밌다고 생각하였소. 다름이 아니라 많은 글 쓰는 이들이 자신의 유년기를 보낸 고향을 모계의 무언가로 이해하는 일이 잦은 까닭이오. 특히 그것이 물을 접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한데 말이오. 어쩌면 이는 포항, 형산강 하구의 특색이겠소? 혹시 그대 그곳 출신이라면 게시판에서 몇 마디 일러 나 셸리를 깨우쳐주시오.

 

*

송재학 시인님의 글을 읽다보니 예전엔 돈이 없어서 가난했는데 이 시대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위로, 힐링, 상처, 마음공부...... 이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저 역시도 어렸을 땐 먹고 사는게 문제였는데 먹고 사는게 해결되고 나니 마음이 가난해졌네요. 공허함을 채우려고 책을 읽었고 외로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을 써도 제가 가진 결핍은 채워지거나 지워지지 않더라고요. 얼마 전 소설을 배우면서 4달간 단편 소설 두편을 썼습니다. 평일에는 매일 여섯시간을 퇴고했고 주말에는 적게는 다섯시간 많게는 열시간을 퇴고했어요. 현실과 허구의 경계의 이야기를 제 안에서 끄집어 내고 퇴고를 반복하면서 저는 결핍을 잊을 수 있었어요. 이게 참 좋더라고요.  이번주 주제는 하나같이 다 좋았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셸리의 말을 읽고 저도 언젠가 모계에 대한 글을 썼던 기억이 났어요. 저의 모계는 인천이예요. 지난주에 엄마가 저와 언니에게 인천에 친척들이 많으니 더 나이들면 거기서 살까? 묻더라고요. 미혼인 언니는 다시는 인천에서 살고싶지 않다고 했고 저는 남편직장 따라가야 한다고 했어요. 인천 앞바다의 어느 부분에는 썩은 바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물이 들어오지 않는 갯벌이기 때문이에요. 이런 갯벌에서는 썩은내가 나거든요. 저는 그런곳에서 살았어요. 저를 20살때까지 키워주신 할머니는 동네사람들과 물이 들어오는 곳까지 경운기를 타고 나가 조개를 잡았고요. 저는 수능을 치르고  이 동네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했어요. 그게 20살이였으니 17년전이네요. 제 삶이 그때와는 너무 많이 변해서오래된것 같기도 하고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해 오래되지 않은것 같기도 하네요. 인천에서 살던 시절을 여섯편이나 글로 써 놓았네요. 한편의 글을 제외하고 다섯편은 그냥 다 삭제시켜 버리고 싶으면서도 제 기억속에서 정말로 잊혀질까봐 걱정되네요.  그 중에 책으로 나온 글을 놓고갈게요. 이 글도 마찬가지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고 지워질까봐 두려운 기억이 있어요.

 

 

*

 

  

수아야 너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 안 좋은 냄새.”

조개 냄새가 나나? 우리 동네에 조개 광이 두 개나 있어. 조개 광에 자주 놀러 가서 그런가 봐.”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친구가 내게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조개 냄새는 갯벌 냄새였다. 어머니가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 날 돌본 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세 번을 갯벌로 가 조개를 캤다. 친구가 내게서 맡은 갯벌 냄새는 할머니 냄새이기도 하다. 냄새만으로도 내 혀는 짠맛을 느꼈고, 빨래를 해도 할머니 옷에서는 짠내가 났다.

할머니와 살던 인천 연수구 동춘동 동춘마을은 어촌계가 있고, 두 개의 조개 광이 있었다. 할머니와 고모는 마을 사람들과 갯벌로 나가 바지락을 캤다. 산더미 같은 바지락을 실은 경운기가 줄을 이었다. 그것을 조개 광 앞에 쏟아내면 동산이 되었다.

나는 유치원을 다니기 전부터 할머니를 따라 조개 광을 드나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조개 광에 모여 바지락을 깠다. 바지락 까는 일은 어른과 아이를 가르지 않았다. 젖가슴처럼 탱글 하고 보드라운 바지락 속살을 투명한 봉투에 담았다. 어촌계에서는 마을 근처 롯데마트에 그것을 납품해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 돈을 나누었다. 돈을 받는 날이면 할머니는 내 손에 천 원을 쥐어주었다.

수아야 오양이네 가서 맛난 거 사 먹어라. 친구도 하나 사주고 너도 먹고 놀아.”

천 원이면 오양이네서 먹고 싶은 것 무엇이든 살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바지 주머니 양쪽 가득 왕 방울만 한 사탕을 샀고, 어떤 날은 초코파이와 우유를 사들고 친구와 조개껍질 무덤에 앉았다.

동네아이들은 조개껍질이 쌓여 있는 곳을 뛰어다니며 발로 밟아 으깼다. 그러면 조각난 조개껍질은 무덤이 됐다. 나는 조개 광에 쌓여 있는 바지락 사이에서 보물찾기도 했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맛조개, 소라, 돌게를 찾고 놀았다. 그것은 큰 주전자 하나를 채울 만큼 나왔다. 사계절 내내 조개 광 한쪽에서는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하얀 김이 안개처럼 조개 광을 채우고, 주전자 뚜껑이 파르르 소리를 내며 끓어올랐다. 주전자 속에는 맛조개, 소라, 돌게가 들어 있었다. 어른들은 그것을 삶아 동네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내주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조개 광에 갈 때마다 삶은 조개를 얻어먹었다. 8, 내 손이 여물어지던 날 고모는 내게 바지락 까는 것을 가르쳤다. 조개 칼은 어른의 엄지손가락만 했다. 닳고 닳은 모습은 초승달 같았다. 조개 칼은 어린 손에도 잘 감겼다.

바지락 꽁무니에 칼날을 대고 비틀면 꽁무니가 맥을 못 추고 입을 벌렸다. 그 사이로 칼날을 집어넣어 부채모양을 따라 바지락 가장자리를 훑었다. 칼로 한 번 더 헤집으면 바지락은 속살을 드러냈다. 내가 발라낸 바지락 살을 할머니 통에 보태면 할머니의 입술은 바지락처럼 부채 모양이됐다. 조개 칼을 잡은 날부터 내 살갗에서도 갯벌의 냄새가 났다.

 

갯벌은 넓고 깊은 바다 밑에 깔려 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모습을 드러내고, 바닷물이 차오르면 모습을 감춘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감추는 것은 갯벌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서울로 일하러 가면 할머니는 물이 빠져나간 갯벌처럼 내게 어머니와 같은 모습을 드러냈고, 어머니가 내 곁에 서면 할머니는 바다 밑에 깔린 갯벌처럼 모습을 감췄다.

바다가 되었다가 육지가 되는 신비의 땅. 그것은 갯벌이고 할머니의 일부였다. 갯벌은 바다를 정화해 준다 하여 자연의 콩팥이라 불린다. 푹 빠지는 갯벌은 넉넉한 할머니의 품처럼 많은 생물을 품고 있다. 할머니가 내게 온정의 터전을 준 것처럼, 갯벌은 철새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철새는 갯벌 한가운데 서서 유유자적하다 미생물로 배를 채운다.

 

내가 한창 조개를 까며 할머니에게 어린 손을 보탤 때부터, 동네 사람들의 한숨이 들려왔다. 할머니도 고모도 갯벌이 매립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동네 사람들은 갯벌에 가지 않았다.

어느 날 할머니와 고모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그것을 조개 딱지라고 불렀다. 조개 딱지를 사려고 마을에 양복 입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갯벌이 매립되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했다. 어촌계의 돈줄이 막혔으니 그 대가로 조개 딱지를 준 것이다.

1994년 그 당시 양복 입은 사람들이 조개 딱지를 천만 원에서 많게는 삼천만 원까지 사갔다. 고모뿐 아니라 너도나도 조개 딱지를 팔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것을 아버지 손에 쥐어주었다.

할머니가 갯벌에 나가지 않고 나도 바지락을 까지 않았지만, 내 몸에는 갯벌 냄새가 났다. 몸에 배인 짠내는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6학년 때 유치원을 함께 다녔던 승희라는 친구와 한 반이 됐다. 그 친구의 혀는 뱀과 같았다. 내게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승희는 내 앞을 지날 때마다 코를 틀어막았다.

아파트에 사는 승희 얼굴은 늘 빛이 났고, 옷에서는 향기가 났다. 승희가 놀릴 때마다 나는 부끄러웠고 부러웠다.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집어삼킬 듯 한 뻘처럼, 친구를 향한 부러움은 날 집어삼킨 것만 같았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날 차에 태웠다. 차를 타고 바다 위로 뻗은 긴 다리를 건넜다. 허허벌판을 지나자 하늘로 치솟은 건물들이 보였다. 아파트와는 비교가 안 되는 높이였다. 아버지는 그중에 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수아야 조개 딱지를 이 아파트와 바꿨다. 저 맨 꼭대기 보이지? 저기가 우리집이다.”

할머니의 땅 갯벌이 매립되고 그 위에 송도신도시가 세워졌다. 웅장한 도시 속 아파트는 내게 배어있는 갯벌의 짠내를 당장이라도 지워줄 것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파트를 보러 가지 않았다. 그리 좋은 아파트를 보러 가지 않겠다던 할머니의 가슴 저 밑엔 갯벌이 있었을 것이다. 갯벌 위로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할머니 가슴에도 물살이 들어찼을 것이다. 할머니는 바지락 캐고 살던 삶을 가슴에 묻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까지 아파트를 보러 가지 않았다.

 

내가 뱃속에 첫 아이를 품은 지 8개월 때, 할머니는 하늘의 별이 됐다. 첫 아이가 두 돌을 맞이한 날 나와 남편은 아이를 안고 바다를 보러 갔다. 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자 아련하고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뚫려있는 모든 감각을 타고 파고들었다. 그 냄새는 꾸덕한 뻘처럼 내게 들러붙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나는 갯벌로 걸어 들어갔다. 뽀글거리는 구멍을 맨손으로 파 헤쳤다. 작은 게는 줄행랑쳤고, 조각난 조개껍질은 내 손에 흔적을 남겼다. 회색빛 뻘 속에 감춰진 검은 흙에서는 진한 갯벌의 냄새가 났다. 내게서 지워진 줄 알았던 갯벌의 짠내는 그대로였다. 갯벌이 품은 냄새는 할머니와 나의 냄새다.

남편과 나는 6월이 되면 종종 갯벌에 간다. 아이들 손에 장갑을 끼우고 장화를 신긴다. 한 손은 아이 손을 잡고, 한 손에는 호미 한 자루를 쥔다. 나는 아이와 함께 갯벌에 발을 딛는다. 한 걸음, 두 걸음, 뒷걸음이 앞걸음을 포개며 할머니 땅 갯벌을 걷는다. 갯벌의 냄새를 안고 불어오는 6월의 바람은 할머니 품처럼 포근하다. 짠 기운으로 눅눅해진 내 머릿결이 바람에 흩날리면, 고개를 들어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깊숙한 곳까지 할머니 냄새로 가득 채운다.

 
 
첫 번째 에세이 부터 저를 말하는 줄 알고 괜히 뜨끔했어요. ㅋㅋ (by 이수아) 낙엽. 눈 (by 감귤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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