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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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7

저의 설레임을 증폭시킨 작가님들의 문장 함께 읽어요. ♡

3번손님2022.03.05 06:26조회 수 1092댓글 0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사계절 중 하나의 계절로만 생각했었는데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어딘가 좀 바뀐 것 같아요. ‘이라는 주제를 본 순간, 제 시선이 어딜 향해 있는지, 시선이 가닿은 곳에 누가 있는지, 누군가를 바라보는 제 마음을 차례로 떠올렸거든요.

 

매해 년 봄을 맞이할 때마다 이렇게나 가슴 떨리게 봄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나 모르겠어요. 봄에는 설레임과 불안과 건조함이 함께였던 것 같아요. 새 학기를 시작한다는 불안, 올해도 작년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건조함 말이에요. 그러나 올해만큼은 불안과 건조함은 느껴지지 않아요. 작년과 올해는 다를거라 믿고, 새로운 시작을 하더라도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부터 설레임은 나와 거리가 먼 감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서른여덟 봄에 다시 소녀의 마음이 되어 설레이고 있네요. 다섯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다보니, 설레임이 증폭되었고요. 마음을 보관할 수 있는 유리병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보관해 두었다가 언젠가 다시 꺼내보고 싶을정도로, 오래 간직하고 싶어요.

 

설레임 한줌 선물하고 싶은 그런 밤, 저의 설레임을 증폭시킨 작가님들의 문장 함께 읽어요.

 

- 남수우 작가님의 에세이 <순환 계절>

 

돌아오는 일로 봄을 기억했다. 다른 계절에게도 돌아온다는 말이 가능하겠지만, 사라졌던 풍경이 되감겨 재생되는 모습은 봄에 가장 잘 보였다. 소식 없이 오래 결석하다가 어느 날 제자리에 앉아있던 친구의 윤곽처럼, 움트기 시작한 나무 주변의 공기는 겨울과 다른 부피로 흔들렸다. 나무가 상실을 시작한다.

 

*

 

빨래를 하고 봄볕에 바짝 말려도, 어떤 기억은 구겨진 영수증처럼 한쪽 주머니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해도 그랬다. 내가 처음 봄을 배웠던 그해. 정확히 말하면, 내가 처음 봄을 살아 보았다고 말하고 싶은 나날들. 그해 봄은 단편적인 장면이 아니라, 한 시절로 남았다.

 

- 윤유나 작가님의 에세이 <,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탄생 주간에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대. 스물세 살이던 해 시내버스 안에서 친구가 말했다. 나도 좀 그래. 나는 앉아 있었고 친구는 서서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너는 어때. 나는 친구에게 여름 공포에 대해 털어놓았다. 누군가에게 자세하게 말한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더운 게 힘들다는 말만 했었는데. 가만히 듣던 친구가 말했다. 그런 게 사춘기 아닐까.

 

*

 

기억의 기분. 기억의 좋고 나쁨에 따라 드는 기분이 아니라 기억 자체에서 느껴지는 기분이란 게 있다. 이 기분에 사로잡히면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 할 것 없이 모든 게 풀려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미워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내가 참 나쁘다. 어쩔 수 없지.

 

- 명로진 작가님의 에세이 <첫 엠티의 추억>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방 끝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릴 뿐, 새벽이 되니 대부분 잠잠했다. 실눈을 떠보니 이불 안에 세 사람이 누워 있다. 서연--희진 누나의 순서였다. 나는 용기를 내서 왼손을 뻗어 희진 누나의 오른손을 잡았다. 따뜻한 오른손은 왼손을 살짝 그러쥐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잠시 후, 내 오른손을 잡는 서연의 왼손이 느껴졌다. 왼손은 떨렸고 오른손엔 땀이 났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혼숙의 봄밤은 그렇게 지났다.

 

- 마녀체력 작가님의 에세이 <좋다면서, 왜 그랬을까>

 

그래서 둘이 사귀었냐고? 핑크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약속 장소로 나갔는데, 황당하게도 바람을 맞았다. 그 사건은 내 인생의 영영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갑자기 마음이 변했나? 다른 급한 일이 생겼나? 약속을 까먹었나? 쪽지 속의 !’는 내가 아니었나? 어쩌면 날마다 쳐다본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여학생의 뒤통수였나? 혼자 수없이 되씹으며 며칠을 꽁꽁 앓았다.

 

혹시라도 한번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분명 같은 하늘 아래 살 텐데도 평생 못 만나는 인연이 있으니까. 내 시시한 첫사랑은 그렇게 피어 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 김정주 작가님의 에세이 <, 이미 그러나 아직>

 

봄도 이 맥락의 선율 안에 있다. 가만히 있어도 거절할 수 없는 희망이 툭툭 쳐서 시비를 걸고, 조금만 눈을 마주쳐도 낭만이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옷장에서 국가대표 소집을 하듯 가장 예쁜 옷들을 집합시켜서 주전과 후보로 나누고, 4계절을 내내 지켜주던 푸르름을 잠시 외면하고 벚꽃에 한눈을 팔게 하는, 그런 봄은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의 밖에는 늘 그렇듯, 때가 되었으니 이미로 찾아오겠지만, 우리 안에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이다.

 

*

 

그동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문을 던지며 함께 손에 손잡고 견뎌온 그 시간이 있었다. 인류는 결국 하나고, 언제라도 또 다른 변수로 말미암아 이렇게 벼랑 끝에 설 수 있다는 지혜를 깨달았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봄이 되어줄 때에, 이미와 아직, 그 너머에 있는 진짜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봄이 우리 안에 이루어질 때, 이것은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든든하고, 아름답게 성장한 봄이 될 것이다.

 

다음주 주제가 할머니더라고요. 할머니 손에 자라다 보니 할머니와 함께였던 추억이 많은데요. 무척 기대가 되네요. 작가님들의 기억속에 자리한 할머니는 어떤 모습일지 작가님들의 글을 기다릴게요. 지금 설레이는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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