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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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6

다섯 작가님들의 글을 발췌했어요^^

이수아2022.01.22 10:58조회 수 569추천 수 5댓글 3

< 이은정 작가님의 에세이>

 

생각해보면, 겨울은 의외로 희망적이다. 사계절 중 유일하게 두 해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마음먹기 좋은 계절이고,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은 계절이 지금이다. 얼마든지 뜨거워도 좋을, 뜨거울수록 좋을. 혹은 이별해도 괜찮은, 봄이 올 테니까. 그래서 겨울이 좋다. 많은 이별이 이 계절에 있었지만 아직 모두와 이별하진 않아서, 앞으로의 시련도 이 계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아직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니므로, 나는 이 계절을 아낌없이 누리고 사모할 테다.

 

불운한 시절과 불행한 기억에서 버티려면, 우리는 큐피드를 만나야 한다. 큐피드라고 해서 사람을 향한 사랑에만 국한한다면 곤란하다. 우리가 매료되어 꼼짝 못 하게 되는 상대가 늘 사람인 것만은 아니니까. 녀석의 화살이 사랑을 매달고 오든 꿈을 매달고 오든 나태해지지만은 말자. 그것만은 어느 계절에도 말자. 그래야 지킬 수 있다. 아무리 추워도 우리, 마음만은 게을러지지 말자.

                                                                                                                                                                                      

      - 우리는 큐피드를 만나야 한다 -

 

 

*

 

눈물 나는 맛이라는 건 어쩌면 음식의 고유한 맛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하잘것없는 간식이겠지만, 누군가는 위생을 따지며 시장에서 음식을 사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커피 한 잔 값도 되지 않는 길거리 음식을 못 먹어서 눈물 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걸 떡볶이를 통해 경험했으나 그 얘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시장에 가면 떡볶이를 먹는다. 그 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런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 서로의 눈물 나는 맛에 대하여 -

 

 

 

<차무진 작가님의 에세이>

 

다만 의아한 것은 3악장입니다. 3악장은 춤곡 형식의 타란텔라 주제인데요, 장난스럽고 씩씩한 선율은 마치 갓 구운 빵을 은쟁반에 담고 무도회장으로 옮기는 듯한 느낌이 배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3악장을 만들면서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둘은 우연히 멀리서 한 번은 만났다고 합니다) 그가 오롯이 마음을 연 존재, 그래서 그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된 여인의 표상을 비통의 한켠에 고이 간직해 두었습니다.

 

그제, 한파가 몰아치던 크리스마스 이브날, 홀로 작업실에 틀어박혀 [비창]을 틀어놓고 눈물이 뚝뚝 떨구던 나는 3악장을 듣는 순간, ,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가 차가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촛불 같은 의지를 3악장 속에 숨겨놓았다는 것을요. 겨울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생명이 숨죽이는 계절입니다. 어두운 굴속에서 체력을 키우고, 상처를 가다듬고, 다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봄을 위해 스스로 어루만지는 계절입니다. 거기에 환희나 설렘이나 기쁨은 있을 수 없습니다. 겨울은 원래 그렇습니다. 겨울은 원래 비통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겨울이 춥고 쓰리다면 충분히 비통해하십시오, 이유를 따져서 뭐 하겠습니까. 하나, 작은 촛불 하나는 남겨두십시오. 아무리 슬플지라도, 보면 그 공간은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폰 메크 같은 인연이 한 명쯤은 있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자, 차이콥스키도 있었던걸요.

 

- 원래 겨울은 비통한 것 -

 

*

 

나중에 최영섭 선생님 얼굴을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 방송을 듣던 즈음에도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였더라구요. 그 연세에도 청년 같고 구름 같은 목소리를 가지셨다니. 그때의 추억을 발판삼아 저는 지금도 최영섭 선생님과 최성원 님의 곡을 무척 좋아합니다. 들국화 1집은 제 최애 앨범이구요.

 

아참, 최영섭 선생님이 하시던 어린이 클래식 방송 시그널은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F장조 OP. 50]이었습니다. 흔히 베토벤의 로망스 2번이라고 부르는데요, 여러분도 들어보시면 . 이 음악하며 고개를 끄덕이실듯합니다. 저는 지금 몹시 흥분해서 CD를 리시버에 걸고 플레이 버튼을 누릅니다. 베토벤 로망스 2번이 흘러나오네요. 간식은 우연한 것을 먹을 때 비로소 즐겁다는 아들의 가르침과 함께 최영섭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라면을 뽀사(?)먹던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 마냥 행복해집니다.

 

- 간식, 우연한 것이어야 즐겁다 -

 

 

<김진규 작가님의 에세이>

 

나는,

 

자주 고독했다.

 

눅눅한 새벽을 밀어내며, 영어학원 대신 도서관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써본 적도 없는 소설을 썼고, 묵혀두었던 시들을 끄집어내어 다시 고치고 새로 썼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그래야만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가장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졌던 일을 다시 하는 일. 그게 내 삶에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참 먼 나라에서 깨달았다.

 

- 비 오는 겨울을 다시 -

 

*

 

주인아주머니는 끓는 떡볶이를 뒤적이고 있었고, 나는 포장마차 내부 끄트머리에 서서 가끔 발을 구르며 오뎅을 먹고 있었는데, 문득

 

오늘 참 힘들었어요.

 

실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다행히 누구도 듣진 못했다. 여전히 붉은 게는 가만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떡볶이는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런 얘길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주인아주머니가 한 번 눈길을 주더니, 다시 뜨거운 오뎅국물을 종이컵에 담아주었다. 나는 다시 공손하게 국물을 들고 후후 불며 마셨다. 뱃속이 환해졌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공손한 위로였다.

 

- 공손한 위로 -

 

 

 

<박은지 작가님의 에세이>

 

국물 인심도 후해서 몇 번씩 리필을 해 먹었다. 추위에 떨다가 오뎅 국물을 마시면 코가 말랑말랑해지면서 축축해지는데 그렇게 코에서부터 열기가 퍼져 나가는 순간이 좋았다. 곧 열과 성을 다해 매장을 청소하고 있을 그가 떠올랐다.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래도 오뎅이 없었다면 나는 기다리지 못했을 거야 하면서 타협하곤 했다. 오뎅을 한 입, 한 입 천천히 베어 먹고 국물을 후후 불어 마시고 있으면 아르바이트를 마친 그가 달려와 오뎅 하나를 집어 든다. 그러고 같이 호들갑 떨면서 추위를 녹였다. 오뎅 국물을 들고 집으로 향하다 손등에 쏟기도 하고 말이다. 기다림의 끝은 칼칼하니 맛이 좋았다.

 

- 기다림의 맛 -

 

*

 

그래도 나에게 글쓰기는 하면 되는 일이었다. 컴퓨터만 있으면, 아니 흰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할 수 있으니까. 여백의 두려움이 나를 잡아먹기 전에 쓰면 되니까. 쓸 것이 없어도, 써지지 않아도 한참 고민하면서 단어가 단어를 불러오는 걸, 문장이 문장을 불러오는 걸 경험하면서,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글이 완성이 돼 있었다. 완성이 만족으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 땀 흘린 만큼, 딱 그만큼 -

 

 

 

<김민섭 작가님의 에세이>

 

우리는 햄버거를 먹고 곧 헤어졌다. D와 다시 만난 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한 번, 그리고 졸업식에 이르러서였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한 장 찍고 이별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 겨울에 햄버거를 먹으며 이미 이별을 고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듯 그에게도 내가 첫사랑이었을 텐데 예쁘게 사귄 기억도 예쁘게 보인 기억도 예쁘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기억도 없다. 사랑한다고 말한 일이 없으니 첫사랑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겠다. 그래서였을까, 그 이후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나를 안아 달라고 많이 말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겨울에 햄버거를 먹다 보면 그 시절의 내가, 그리고 그가, 어디엔가 문득 앉아 있다. 사랑하는 일이 익숙지 않았던, 부끄러운 감정이라 여겼던, 손이 잡고 싶어도 잡지 못했던, 그 앳된 두 사람이 보인다. 나는 둘에게 다가가 다 괜찮다고 사랑할 때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이어주면서 손 잡으니까 좋지, 헤어질 때까지 이 손 놓지 마.” 하는 말도 덧붙여야겠다.

 

- 사랑해, 너를 보고 싶었어, 나를 안아 줘 -

 

*

 

사회인들의 야구란 계절을 타지 않는다. ‘겨울 리그라고 부르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겨울에도 자신의 취미를 어떻게든 이어 나간다. 기록하는 나는, 그들이 조금 더 많은 삼진을 잡고, 조금 더 많은 안타를 치고, 어떻게든 그날 하루가 즐겁기를 응원했다. 모두가 사회인으로 고단한 평일을 버티고 버텨서 얻은 실로 소중한 하루인 것이다. 볼넷이 덜 나오고 잡아야 할 아웃 카운트를 잡으며 서로 야구 같은 야구를 한 날엔 지든 이기든 모두의 얼굴이 밝았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야구 비슷한 것을, 아니, 야구를 해냈어, 하는 마음들이 저마다 읽혔다. 그들을 기록한 나도 조금은 더 정갈한 기록지를 보며 함께 웃었다.

 

(중략)

 

그래도 종종, 아니 가끔, 아니 그보다도 더 드문드문, 나는 캐치볼을 한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를 만나서 공을 던지고 공을 받는다. 곁에서 보면 저런 걸 왜 하고 있지, 저게 재미있나,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공에 나의 마음을 실어 보낸다. 캐치볼을 하는 사람들은 진심을 담아 상대에게 보낸 공이 진심으로 가서 닿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공은 글러브에 들어가는 순간 정말로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우리는 공이 살아서 온다라는 표현을 쓴다. 단순히 세게 던져서가 아니다. 진심이 담긴 공은 그 속도와 관계없이 묵직하게 감긴다. 그렇게 공을 주고받고 나면 서로의 간절함을 읽어낼 수 있다. 언젠가 반드시 야구를 하는 날이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이 겨울을 지나 봄날에 다다르고 말겠다는, 그런 마음들을.

 

-겨울의 캐치볼을 좋아하시나요 -

 

반가워요, 셸리! (by 스타크) 대학을 다시 다닐수 있냐고? (by 화니)
댓글 3
  • 2022.1.22 11:40

    옆에서 첫째가 참견해서 덧글을 못 달았네요. 작가님들의 글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에요. 자꾸만 보여달라고 해서 첫째랑 같이 읽었어요. 다시 읽어보니 더 좋네요. ^^ 차무진 작가님의 최애 앨범 들국화 1집 들어봤어요. 노래가 좋아요. 잘들었어요. 감사합니다.^^

  • 2022.1.24 00:07

    발췌하신 글들 다시 읽어보니 또 새롭고 좋네요^^ 감사합니다

  • @떠나
    2022.1.24 00:27

    아~ 읽을 수록 와 닿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하던데 읽을 수록 저만 새롭게 느끼는 게 아니었네요. 역시 다섯 작가님들 최고! 따봉! 다시 한번 더 읽어 주셔서 저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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