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시즌3

백수가 되어버렸지만 집콕하는 겨울이 싫지 않은

황혜2020.12.20 15:44조회 수 596추천 수 6댓글 1

 

입맛에 맞는 글은 읽고 나면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며듭니다. 

아침마다 새벽 6시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의 새벽 6시는 어떠했나 복기하게 되네요.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신 셸리묘와 작가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안물안궁을 무릅쓰고 저의 새벽 6시를 써봅니다. 

 

 

F0426F76-EC04-4837-9EE7-C5661AC7F1EF.png

 

코가 시려 깼다. 고개를 드니 황야(고양이, 3세)가 제 자리, 본묘가 좋아하는 이불 위에 앉아 나를 보고 있다. ‘야옹’(일어났냐옹)하고 짧게 한 번 운다. 

 

새벽 6시. 수련을 시작한다. 7시를 넘기자 하늘이 진한 감색에서 새파랗게 변하더니 7시 40분부터 희붐해졌다는 것을, 촬영된 영상을 보고 알았다. 4년 전 이맘때도 그랬지. 나는 새벽 수업을 위해 출근했다. 버스를 타면 한 방에 가는 거리였지만 늘 6시 즈음 일어나야 했다.

 

검은 하늘 속에서 수업을 시작하면 사바사나(송장 자세)를 취할 때 즈음 아침 햇살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 벽 전체가 거대한 창으로 강남대로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좋은 인연을 여럿 만났다. 심신을 단련하고 일터로 나아가려는 부지런한 사람들. 이들의 하루를 여는 임무를 맡은 나는 절대 몽롱할 수 없었다. 

 

50분의 수업을 끝내면 부리나케 다음 수업을 위해 이동해야 했다. 1시간 거리로 기억한다. 그곳에서는 수십 명의 어머님들이 나를 기다렸다. 월화수목금 아침 9시 30분마다 만났다. 나를 딸처럼 예뻐해 주시면서도 늘 ‘아이고 우리 선생님’ 부르며 극진히 대우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요가 강사로 만들어졌다. 이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프리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시작한 생계유지 활동이 “나는 요가 강사입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진짜 직업이 되기까지, 요가를 통해 작가가 되기까지, 나 혼자만의 의지와 동기 부여로는 부족한 여정이었다. 

오전 일정을 마치면 1시간 반 남짓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먹고 그날 치 분량의 글을 매일 썼다. 고단하지만 단단한 루틴이었다. 

 

그렇게 4년이 흘러 본가로 돌아왔다. 이제 집에는 언니와 남동생이 없다. 각자 제 짝을 찾아 둥지를 꾸려 떠났다. 그렇다면 외동딸의 신분으로 부모님과 살아볼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못다 한 효도를 다하기 위해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안다.)  

본가에 오기 전에 마련해둔 다음 둥지는 다행히도 월세가 아니다. 입주까지 7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나의 짝은 저기서 저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지 졸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늘 평화로운 황야, 고양이로소이다. 

 

2020년 12월 20일 일요일 

From 

요가 에세이 요르가즘을 출간하자마자 터진 팬데믹 사태로 인해 백수가 되어버렸지만 집콕하는 겨울이 싫지 않은 황혜원

 

 

 

 

 

요가 에세이 ‘요르가즘’을 쓰고 그렸습니다.
댓글 1
  • 2020.12.22 11:28

    황야가 넘 편하고 따뜻해 보이네요~~~ ㅎㅎ

댓글 달기

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시즌2 핫펠트 작가의 소설, 셸리를 통해 최초 발표1 아돌 2021.02.04 2577 5
416 시즌6 책이 너무 좋고 글이 너무 좋고 소설이 너무 ...14 이수아 2022.01.21 594 5
415 시즌1 이메일 제목 말인데요,12 지현 2020.03.18 432 6
414 시즌3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9 시안 2021.01.01 667 6
413 시즌6 김진규작가님의 글은, 제목부터 흡입력있었다!!9 영배알고싶다 2022.01.27 727 3
412 시즌6 시즌 6 셸집사님들 안녕하세요! 김민섭 작가입...8 아돌 2022.01.06 162 4
411 시즌6 땡! 땡! 땡!7 이현미 2022.02.03 930 4
410 시즌6 취미, 조금 쑥스럽지만 좋아하는 취미!!7 영배알고싶다 2022.01.19 228 4
409 시즌4 아침엔 그렇게 비가 오더니, 지금은 언제 비왔...7 바켄두잇 2021.05.07 939 5
408 시즌6 저의 취미라면7 떠나 2022.01.21 253 3
407 시즌1 으앙!6 해와 2020.03.26 180 3
406 시즌6 누군가의 공손한 위로6 떠나 2022.01.11 88 2
405 시즌1 확인 부탁드려요6 화니빠 2020.03.09 204 0
404 시즌1 셸리올시다. 실수를 하였소.6 Shelley 2020.04.24 476 4
403 시즌6 알고보니 연기가 취미인 작가님!6 오즈 2022.01.19 711 3
402 시즌6 김진규 시인님의 등단작 <대화> 함께 읽...6 그냥하자 2022.01.26 672 2
401 시즌6 우리는 큐피드를 만나야 한다. :)5 떠나 2022.01.06 113 6
400 시즌6 안녕하세요 시즌 6과 함께 나타난 김진규입니다.5 고노와다 2022.01.11 127 6
399 시즌6 이은정 작가님의 스트라빈스키란?5 영배알고싶다 2022.01.26 543 2
398 시즌6 감각 하나쯤?5 산골아이 2022.02.17 751 2
397 시즌1 편지 나도요나도요5 시안 2020.04.22 254 3
396 시즌1 어쩌다 작가5 시안 2020.03.16 252 4
395 시즌1 글 언제 메일로 오나요?5 jjg 2020.03.09 204 0
394 시즌1 버그일까요?4 정지현 2020.03.09 255 2
393 시즌6 내 큐피트는 어디에(?)4 이현미 2022.01.06 158 3
392 시즌1 작고 사소하지만 유용한 제안이 하나 있소이다4 공처가의캘리 2020.04.13 494 4
391 시즌6 눈물 나는 맛 = 추억맛!4 산골아이 2022.01.11 155 2
390 시즌1 깔깔깔 오랑캐4 라라 2020.04.20 156 4
389 시즌6 간식, 눈물나는 맛!!4 영배알고싶다 2022.01.11 82 2
388 시즌6 푹 빠져 읽을게요4 그냥하자 2022.02.04 806 4
387 시즌1 오늘은 혹시 편지 안오나요...?4 Ryeon 2020.04.21 184 2
이전 1 2 3 4 5 6 7 8 9 10 ... 14다음
첨부 (1)
F0426F76-EC04-4837-9EE7-C5661AC7F1EF.png
1.45MB / Download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