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시즌3

백수가 되어버렸지만 집콕하는 겨울이 싫지 않은

황혜2020.12.20 15:44조회 수 604추천 수 6댓글 1

 

입맛에 맞는 글은 읽고 나면 쓰고 싶은 마음이 스며듭니다. 

아침마다 새벽 6시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의 새벽 6시는 어떠했나 복기하게 되네요.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신 셸리묘와 작가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안물안궁을 무릅쓰고 저의 새벽 6시를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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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시려 깼다. 고개를 드니 황야(고양이, 3세)가 제 자리, 본묘가 좋아하는 이불 위에 앉아 나를 보고 있다. ‘야옹’(일어났냐옹)하고 짧게 한 번 운다. 

 

새벽 6시. 수련을 시작한다. 7시를 넘기자 하늘이 진한 감색에서 새파랗게 변하더니 7시 40분부터 희붐해졌다는 것을, 촬영된 영상을 보고 알았다. 4년 전 이맘때도 그랬지. 나는 새벽 수업을 위해 출근했다. 버스를 타면 한 방에 가는 거리였지만 늘 6시 즈음 일어나야 했다.

 

검은 하늘 속에서 수업을 시작하면 사바사나(송장 자세)를 취할 때 즈음 아침 햇살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 벽 전체가 거대한 창으로 강남대로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좋은 인연을 여럿 만났다. 심신을 단련하고 일터로 나아가려는 부지런한 사람들. 이들의 하루를 여는 임무를 맡은 나는 절대 몽롱할 수 없었다. 

 

50분의 수업을 끝내면 부리나케 다음 수업을 위해 이동해야 했다. 1시간 거리로 기억한다. 그곳에서는 수십 명의 어머님들이 나를 기다렸다. 월화수목금 아침 9시 30분마다 만났다. 나를 딸처럼 예뻐해 주시면서도 늘 ‘아이고 우리 선생님’ 부르며 극진히 대우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요가 강사로 만들어졌다. 이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프리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시작한 생계유지 활동이 “나는 요가 강사입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진짜 직업이 되기까지, 요가를 통해 작가가 되기까지, 나 혼자만의 의지와 동기 부여로는 부족한 여정이었다. 

오전 일정을 마치면 1시간 반 남짓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먹고 그날 치 분량의 글을 매일 썼다. 고단하지만 단단한 루틴이었다. 

 

그렇게 4년이 흘러 본가로 돌아왔다. 이제 집에는 언니와 남동생이 없다. 각자 제 짝을 찾아 둥지를 꾸려 떠났다. 그렇다면 외동딸의 신분으로 부모님과 살아볼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못다 한 효도를 다하기 위해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안다.)  

본가에 오기 전에 마련해둔 다음 둥지는 다행히도 월세가 아니다. 입주까지 7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나의 짝은 저기서 저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지 졸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늘 평화로운 황야, 고양이로소이다. 

 

2020년 12월 20일 일요일 

From 

요가 에세이 요르가즘을 출간하자마자 터진 팬데믹 사태로 인해 백수가 되어버렸지만 집콕하는 겨울이 싫지 않은 황혜원

 

 

 

 

 

요가 에세이 ‘요르가즘’을 쓰고 그렸습니다.
댓글 1
  • 2020.12.22 11:28

    황야가 넘 편하고 따뜻해 보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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