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시즌1

시간을 잃어버렸어

시안2020.04.22 19:57조회 수 283추천 수 4댓글 1

할머니가 치매였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찾아왔다. 살던 동네에서 이사를 계획중이라고 했을 때 할머니는 죽어도 이사를 안가겠다고 하다가 이사 당일에 동네를 한바퀴 돌며 이 집 저 집 찾아가 내가 빌려준 돈을 달라고 했다.

와~ 이 배신감이란!

그러니까 엄마가 시장에서 장봐올 때 반찬값 줄여 당신 드실 박하사탕 한봉지는 꼭 사다달라셨는데 그 사탕은 낮에도 드셨겠지만 밤에도 드셨다. 불 끄고 우리가 잠들만 하면 부스럭부스럭 거리며 오물오물 드셨는데  난 그 비닐을 만지작 거리는 소리가 뭔지 알게 됐을때 할머니한테 소리를 질렀다. 안볼때 드시던지 아니면 먹고 싶다는 동생들도 좀 주라고! 그때 할머니는 날 째려보며 '호랭이가 물어갈 년'이라고 욕을 했다. 점점 할머니가 싫어졌다. 맨날 돈이 없다는게 할머니 레퍼토리였다. 남동생이 준비물 값을 미리 받아놓지 못한 날에 할머니한테 달라고 했는데 주지 않았다. 울며 학교를 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할머니가 또 미워졌다. 품앗이로 농본기에 분명 알바를 하시건만 왜 돈이 없는지 난 모르겠더라. 박하사탕도 엄마가 사다주는데 왜 돈이 없을까? 그런데 대반전이다. 동네 한 집  걸러 한 집에 돈을 빌려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짐작하고 있었나보다. 할머니가 조기 치매증상이 있다는걸...

할머니가 이웃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사실은 엄마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삿짐을 실은 차는 출발 시간이 되었고 일주일 후에 다시 받으러 오자고 달래어 이사를 왔다.

돈을 받으러 엄마가 갔을 때 동네 사람 모두가 할머니를 치매로 몰아 돈을 안 빌렸다거나 갚았다고 해서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 엄마가 당사자도 아니고 차용증을 받아 놓은 것도 아니니 도리 없이 당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밤늦게까지 라디오를 듣다 잠든 나를 누가 막 때렸다. 자다 너무 놀라고 아파 정신을 차려보니 할머니였다. 이유는 학교를 왜 안가느냐며 육시럴 년이 돈 들여 핵교 보내놨더니 자빠져 잔다고 두들겨 팬거다. 힘은 왜 그렇게 세던지..ㅠ  결정적으로 다음 날은 일요일인거다. 학교 안가는 날이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어느 토막인지 도무지 모를 부분부터 어제 일까지 들쭉날쭉 잃어갔다. 집을 잃어 파출소에서 데려다 준 날도 점점 늘어갔다. 그러다 나를 못알아보았다. 

 

지금 나는 노인요양보호센터에서 서예와 캘리그라피 프로그램 보조강사로 봉사를 하고 있는데 22명 중 절반이 경,중증 치매노인들이다. 3년째 나를 만나시면서도 들어오실때 '여기 모임있어?'라고 묻기도 하고, 갑자기 내 손등을 때리며 '아이고~~ 손이 이쁘네~  결혼은 했어?'라거나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거나...그러신다.

컨디션도 날씨에 민감하다. 조금만 기온차가 있어도 힘들어하신다. 그러다 병원에 장기 입원하시는 경우도 있다. 빈자리가 생기는게 두렵다. 코로나로 수업이 중단되어 못가고 있는데 잘 지내시려나....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이다.

맛있는 글밥을 찾아 화선지에 옮겨 쓰고 먹그림으로 옷을 입히는 생계형 작가. 행간의 글들 사이에서 놀 생각으로 설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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