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시즌1

절교한 닭뿟뿡꺅

시안2020.04.17 23:34조회 수 136추천 수 3댓글 1

초등학교 오학년때 일이다.

수원에서 일을 하던 아빠가 일주일에 한번 오는 날이면 엄마는 백숙을 끓였다. 양 손에 검정비닐을 덜래덜래 들고 들어오는 아빠에게 우린 뛰어가 매달렸다. 아빠가 양 팔에 우리를 번갈아가며 매달고 한바퀴 돌면 그렇게 신이 났다. 부엌에서는 닭이 푹 삶아지고 있고 그저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우린 아빠 옆에서 놀면 그만이었다.근데 딱 싫은게 있었다.예전에는 닭을 잡아주는 가게가 따로 있었는데 그 가게 뒷편 닭장에서 주인아저씨가 닭의 날개쭉지를 잡아채서 꺼내 내가 보는 앞에서 죽여 뜨거운 물에 첨벙첨벙 한 다음 닭의 털을 대강 훑어냈다. 그 다음 큰 탈수기 같은데에다 돌리면 닭살이 드러났던것이었다. 

 

그 가게에서 닭을 사오는건 내 몫이었는데 집에서 가게까지의 거리가 좀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장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일하러 가고 아빠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돌아왔다. 엄마는 나가기 전에 어김없이 닭 심부름값을 내게 주며 알맞은 타이밍에 닭집에서 닭을 사오면 할머니가 푹 삶기로 했으니 돈을 잘 넣어두었다가  다녀오라는 다짐다짐을 했다. 그런데 놀다 들어와서 닭집을 가려고 돈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것이었다. 동생들을 집합시켜 따져 물었지만 아무도 돈이 있었다는걸 몰랐다는 것이다. 엄마가 나와 단 둘이 있을때 말을 해놓긴 했지만 왜 티비앞에 놓아둔 돈이 없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 아빠가 왔는데 닭을 못샀다. 난 결국 울었다. 닭이 물에 빠져 있어야하는데..닭이 없어서 울었다.아빠는 자초지종을 듣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용서해 줄테니 누구든 돈을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아빠에게만 얘기하라고 했는데 우린 멀뚱이들이 되었고 아빠는 우리들 중 누군가 거짓말하는거라고 생각하고 화가 나서 그만 수원으로 가버렸다. 아빠가 떠나고 얼마 안되서 나는 돈을 찾았다. 추석에 이모가 사준 자켓 주머니에서 돈을 찾았는데 왜 거기 있었는지 더듬어 생각해보니 티비앞에 놓였던 돈을 고무줄 바지 속에 넣었다가 다시 다른 옷 주머니에 넣었다가 마지막으로 아끼는 옷 속에 넣어놓았던 것이다. 돈을 잃어버린줄 알고 당황해서 여기저기 뒤졌을때 딱 그 옷만 안뒤졌던 내 잘못이었다. 엄마가 돌아와 버럭 화를 냈다. 억울한 내 동생들에게도 미안했고 아빠는 쉬지 못하고 가버리고 엄마는 그렇다고 수원으로 가버린 아빠를 원망하며 또 화를 냈다. 너무 속상했다. 

공교롭게도 그 해 겨울 아빠는 간경화로 인한 시한부 판정을받았고 내 머리는 지진이 났다. 나는 아빠가 아픈게 꼭 그 날의 내 실수 때문인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빠는 병원에서 어림잡은 시간보다 2년 3개월쯤 더 살다 돌아가셨지만 나는 닭값을 잃어버린 날이 두고두고 가장 후회되는 날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난 닭을 먹지 않았다. 닭을 보면 닭 가게에서 나던 닭비린내도 생생하고 징그러웠던 장면도 생각날뿐더러 내가 나한테 화가 나는  그날의 내 실수가 같이 떠오른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식구들 반찬으로 잘 챙겨 먹이지만 난 간도 보지 않고 요리하는 재주를 터득했다. 

 

닭을 끊고 많은 불편을 겪으면 지냈다. 유일하게 먹을 줄 아는 고기였는데...그마저도 안먹으니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음식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 재미 있는것은 지인 다수가 해물 싫고 고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우연히 좋은 기회를 통해 난 닭고기를 다시 사귀었지만 역시 고기 체질은 아닌것 같다. 

 

그나저나 난 이번 주 편지의 작가를 오은 작가외에 아무도 못맞추고 있다. 꽝이 수시로 나오는 다트판이다. 뿅

맛있는 글밥을 찾아 화선지에 옮겨 쓰고 먹그림으로 옷을 입히는 생계형 작가. 행간의 글들 사이에서 놀 생각으로 설레는 중
댓글 1
  • 2020.4.21 14:49

    아... 닭집에서 닭을 받아오던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읽다가 슬퍼졌네요. 저도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치킨을 먹지 않게 되었어요. 치킨은 여전히 맛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여러 사연에 따라 슬픔도 깊어지는 음식이네요.

댓글 달기

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시즌2 핫펠트 작가의 소설, 셸리를 통해 최초 발표1 아돌 2021.02.04 2689 5
386 시즌1 따라 울었습니다 빨간구두 2020.03.20 124 6
385 시즌1 이메일 제목 말인데요,12 지현 2020.03.18 440 6
384 시즌3 창문이 액자가 되는 계절2 렌지 2020.12.16 364 6
383 시즌1 셀리의 저녁 메일이 반갑네요.1 화니 2020.03.30 144 6
382 시즌4 내가 가장 예쁠 때는 '오늘' 이라는...3 이수아 2021.05.14 984 6
381 시즌1 셸리외 함께 차마시며 수다 떨고 싶어요.2 감람 2020.04.30 307 6
380 시즌2 글.1 쭈삐 2020.07.17 150 6
379 시즌3 정말 생각치 못한 반전2 blue 2020.12.19 568 6
378 시즌2 다시 만나 반가워요.1 화니 2020.07.06 150 6
377 시즌1 글 읽다가 사무실에서 푸하하~~~ 엘리시아 2020.03.16 119 6
376 시즌1 매일매일 다른 작가의 글... 먼지 2020.03.21 109 6
375 시즌3 백수가 되어버렸지만 집콕하는 겨울이 싫지 않은1 황혜 2020.12.20 604 6
374 시즌3 엉덩이는 바빠요~1 화니 2021.01.24 641 6
373 시즌3 아침이 반가운 이유1 archivarin 2020.12.17 330 6
372 시즌1 좋은 독자, 그리고 친구1 지현 2020.03.24 176 6
371 시즌1 장군이와 고양이3 해산강 2020.03.17 133 6
370 시즌2 나만의 북극1 이소소 2020.07.24 228 6
369 시즌1 감성도 무한리필...... 화니 2020.03.23 134 6
368 시즌1 비가 오연....1 화니 2020.04.26 301 6
367 시즌2 핫펠트 언니에게3 아누 2020.07.15 205 5
366 시즌3 첫눈만큼 반가운 에세이1 화니 2020.12.14 228 5
365 시즌2 삼김이기 때문에, 삼김 일지라도1 Aros 2020.07.17 169 5
364 시즌4 이서희 작가님의 어쩌면, 행복한 운명론자를 읽고 바켄두잇 2021.05.27 804 5
363 셸리가 편지를 드립니다-《에세이》발송과 결... Shelley 2020.03.08 308 5
362 시즌1 편지 제목은 빨간구두 2020.03.19 324 5
361 시즌3 낮 12시엔 늘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엄마의 모... 이수아 2021.01.13 502 5
360 시즌6 책이 너무 좋고 글이 너무 좋고 소설이 너무 ...14 이수아 2022.01.21 604 5
359 시즌1 이은정 작가의 '내인생은 정심시간'4 분홍립스틱 2020.05.18 588 5
358 시즌1 어쩔 수 없었던 고양이4 시안 2020.03.11 201 5
357 시즌3 덕분에 순해진 하루를 시작합니다.2 루디 2020.12.16 250 5
이전 1 2 3 4 5 6 7 8 9 10 ... 14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