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오학년때 일이다.
수원에서 일을 하던 아빠가 일주일에 한번 오는 날이면 엄마는 백숙을 끓였다. 양 손에 검정비닐을 덜래덜래 들고 들어오는 아빠에게 우린 뛰어가 매달렸다. 아빠가 양 팔에 우리를 번갈아가며 매달고 한바퀴 돌면 그렇게 신이 났다. 부엌에서는 닭이 푹 삶아지고 있고 그저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우린 아빠 옆에서 놀면 그만이었다.근데 딱 싫은게 있었다.예전에는 닭을 잡아주는 가게가 따로 있었는데 그 가게 뒷편 닭장에서 주인아저씨가 닭의 날개쭉지를 잡아채서 꺼내 내가 보는 앞에서 죽여 뜨거운 물에 첨벙첨벙 한 다음 닭의 털을 대강 훑어냈다. 그 다음 큰 탈수기 같은데에다 돌리면 닭살이 드러났던것이었다.
그 가게에서 닭을 사오는건 내 몫이었는데 집에서 가게까지의 거리가 좀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장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일하러 가고 아빠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돌아왔다. 엄마는 나가기 전에 어김없이 닭 심부름값을 내게 주며 알맞은 타이밍에 닭집에서 닭을 사오면 할머니가 푹 삶기로 했으니 돈을 잘 넣어두었다가 다녀오라는 다짐다짐을 했다. 그런데 놀다 들어와서 닭집을 가려고 돈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것이었다. 동생들을 집합시켜 따져 물었지만 아무도 돈이 있었다는걸 몰랐다는 것이다. 엄마가 나와 단 둘이 있을때 말을 해놓긴 했지만 왜 티비앞에 놓아둔 돈이 없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 아빠가 왔는데 닭을 못샀다. 난 결국 울었다. 닭이 물에 빠져 있어야하는데..닭이 없어서 울었다.아빠는 자초지종을 듣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용서해 줄테니 누구든 돈을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아빠에게만 얘기하라고 했는데 우린 멀뚱이들이 되었고 아빠는 우리들 중 누군가 거짓말하는거라고 생각하고 화가 나서 그만 수원으로 가버렸다. 아빠가 떠나고 얼마 안되서 나는 돈을 찾았다. 추석에 이모가 사준 자켓 주머니에서 돈을 찾았는데 왜 거기 있었는지 더듬어 생각해보니 티비앞에 놓였던 돈을 고무줄 바지 속에 넣었다가 다시 다른 옷 주머니에 넣었다가 마지막으로 아끼는 옷 속에 넣어놓았던 것이다. 돈을 잃어버린줄 알고 당황해서 여기저기 뒤졌을때 딱 그 옷만 안뒤졌던 내 잘못이었다. 엄마가 돌아와 버럭 화를 냈다. 억울한 내 동생들에게도 미안했고 아빠는 쉬지 못하고 가버리고 엄마는 그렇다고 수원으로 가버린 아빠를 원망하며 또 화를 냈다. 너무 속상했다.
공교롭게도 그 해 겨울 아빠는 간경화로 인한 시한부 판정을받았고 내 머리는 지진이 났다. 나는 아빠가 아픈게 꼭 그 날의 내 실수 때문인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빠는 병원에서 어림잡은 시간보다 2년 3개월쯤 더 살다 돌아가셨지만 나는 닭값을 잃어버린 날이 두고두고 가장 후회되는 날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난 닭을 먹지 않았다. 닭을 보면 닭 가게에서 나던 닭비린내도 생생하고 징그러웠던 장면도 생각날뿐더러 내가 나한테 화가 나는 그날의 내 실수가 같이 떠오른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식구들 반찬으로 잘 챙겨 먹이지만 난 간도 보지 않고 요리하는 재주를 터득했다.
닭을 끊고 많은 불편을 겪으면 지냈다. 유일하게 먹을 줄 아는 고기였는데...그마저도 안먹으니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음식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 재미 있는것은 지인 다수가 해물 싫고 고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우연히 좋은 기회를 통해 난 닭고기를 다시 사귀었지만 역시 고기 체질은 아닌것 같다.
그나저나 난 이번 주 편지의 작가를 오은 작가외에 아무도 못맞추고 있다. 꽝이 수시로 나오는 다트판이다. 뿅
아... 닭집에서 닭을 받아오던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읽다가 슬퍼졌네요. 저도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치킨을 먹지 않게 되었어요. 치킨은 여전히 맛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여러 사연에 따라 슬픔도 깊어지는 음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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