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시즌1

절교한 닭뿟뿡꺅

시안2020.04.17 23:34조회 수 128추천 수 3댓글 1

초등학교 오학년때 일이다.

수원에서 일을 하던 아빠가 일주일에 한번 오는 날이면 엄마는 백숙을 끓였다. 양 손에 검정비닐을 덜래덜래 들고 들어오는 아빠에게 우린 뛰어가 매달렸다. 아빠가 양 팔에 우리를 번갈아가며 매달고 한바퀴 돌면 그렇게 신이 났다. 부엌에서는 닭이 푹 삶아지고 있고 그저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우린 아빠 옆에서 놀면 그만이었다.근데 딱 싫은게 있었다.예전에는 닭을 잡아주는 가게가 따로 있었는데 그 가게 뒷편 닭장에서 주인아저씨가 닭의 날개쭉지를 잡아채서 꺼내 내가 보는 앞에서 죽여 뜨거운 물에 첨벙첨벙 한 다음 닭의 털을 대강 훑어냈다. 그 다음 큰 탈수기 같은데에다 돌리면 닭살이 드러났던것이었다. 

 

그 가게에서 닭을 사오는건 내 몫이었는데 집에서 가게까지의 거리가 좀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장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일하러 가고 아빠는 하얀 고무신을 신고 돌아왔다. 엄마는 나가기 전에 어김없이 닭 심부름값을 내게 주며 알맞은 타이밍에 닭집에서 닭을 사오면 할머니가 푹 삶기로 했으니 돈을 잘 넣어두었다가  다녀오라는 다짐다짐을 했다. 그런데 놀다 들어와서 닭집을 가려고 돈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것이었다. 동생들을 집합시켜 따져 물었지만 아무도 돈이 있었다는걸 몰랐다는 것이다. 엄마가 나와 단 둘이 있을때 말을 해놓긴 했지만 왜 티비앞에 놓아둔 돈이 없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흘러 아빠가 왔는데 닭을 못샀다. 난 결국 울었다. 닭이 물에 빠져 있어야하는데..닭이 없어서 울었다.아빠는 자초지종을 듣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용서해 줄테니 누구든 돈을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아빠에게만 얘기하라고 했는데 우린 멀뚱이들이 되었고 아빠는 우리들 중 누군가 거짓말하는거라고 생각하고 화가 나서 그만 수원으로 가버렸다. 아빠가 떠나고 얼마 안되서 나는 돈을 찾았다. 추석에 이모가 사준 자켓 주머니에서 돈을 찾았는데 왜 거기 있었는지 더듬어 생각해보니 티비앞에 놓였던 돈을 고무줄 바지 속에 넣었다가 다시 다른 옷 주머니에 넣었다가 마지막으로 아끼는 옷 속에 넣어놓았던 것이다. 돈을 잃어버린줄 알고 당황해서 여기저기 뒤졌을때 딱 그 옷만 안뒤졌던 내 잘못이었다. 엄마가 돌아와 버럭 화를 냈다. 억울한 내 동생들에게도 미안했고 아빠는 쉬지 못하고 가버리고 엄마는 그렇다고 수원으로 가버린 아빠를 원망하며 또 화를 냈다. 너무 속상했다. 

공교롭게도 그 해 겨울 아빠는 간경화로 인한 시한부 판정을받았고 내 머리는 지진이 났다. 나는 아빠가 아픈게 꼭 그 날의 내 실수 때문인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빠는 병원에서 어림잡은 시간보다 2년 3개월쯤 더 살다 돌아가셨지만 나는 닭값을 잃어버린 날이 두고두고 가장 후회되는 날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난 닭을 먹지 않았다. 닭을 보면 닭 가게에서 나던 닭비린내도 생생하고 징그러웠던 장면도 생각날뿐더러 내가 나한테 화가 나는  그날의 내 실수가 같이 떠오른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식구들 반찬으로 잘 챙겨 먹이지만 난 간도 보지 않고 요리하는 재주를 터득했다. 

 

닭을 끊고 많은 불편을 겪으면 지냈다. 유일하게 먹을 줄 아는 고기였는데...그마저도 안먹으니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음식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 재미 있는것은 지인 다수가 해물 싫고 고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우연히 좋은 기회를 통해 난 닭고기를 다시 사귀었지만 역시 고기 체질은 아닌것 같다. 

 

그나저나 난 이번 주 편지의 작가를 오은 작가외에 아무도 못맞추고 있다. 꽝이 수시로 나오는 다트판이다. 뿅

맛있는 글밥을 찾아 화선지에 옮겨 쓰고 먹그림으로 옷을 입히는 생계형 작가. 행간의 글들 사이에서 놀 생각으로 설레는 중
댓글 1
  • 2020.4.21 14:49

    아... 닭집에서 닭을 받아오던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읽다가 슬퍼졌네요. 저도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치킨을 먹지 않게 되었어요. 치킨은 여전히 맛있기는 하지만 그만큼 여러 사연에 따라 슬픔도 깊어지는 음식이네요.

댓글 달기

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시즌2 핫펠트 작가의 소설, 셸리를 통해 최초 발표1 아돌 2021.02.04 2577 5
356 시즌2 매순간 소중하다^^2 수지 2020.08.18 629 1
355 시즌6 겨울엔 군고구마와 김치를 먹고 뜨개질을 하면...3 이수아 2022.01.05 102 1
354 시즌6 욕해도 되나요? 바렌보임 xxx.1 이현미 2022.02.07 868 1
353 시즌1 3월 8일 전 구독신청을 했는데 《에세이》가 ... Shelley 2020.03.09 135 1
352 시즌6 김민섭 작가님의 책 <경계인의 시선> 읽... 그냥하자 2022.01.27 850 1
351 시즌1 제목 보고 대담(大膽)한 글인 줄... dorothy 2020.05.15 503 1
350 시즌1 3월 8일까지였던 신청 기한 이후 구독신청을 ... Shelley 2020.03.09 153 1
349 시즌7 명로진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 궁금해요^^2 3번손님 2022.03.03 1002 1
348 시즌1 버그일까요?4 정지현 2020.03.09 255 2
347 시즌2 갑자기, 고양이1 김민애 2020.08.08 244 2
346 시즌1 오은 작가님, 난데없이 쓸데없이 나무 2020.05.19 739 2
345 시즌1 늘 한 발 늦는 사람 빨간구두 2020.05.12 174 2
344 시즌6 취미가 이상하고 부끄러울것 까지야ㅎㅎ(feat....3 산골아이 2022.01.21 327 2
343 시즌6 내일 박은지 시인님의 에세이가 도착하겠네요....2 그냥하자 2022.01.27 702 2
342 시즌2 무소유가 생각납니다.^^1 수지 2020.09.19 580 2
341 시즌4 '나' 사랑하기1 능이 2021.05.26 661 2
340 시즌2 이번주제 머리 아파요1 셸리2 2020.09.19 698 2
339 시즌1 찐~한 달달이 커피 화니 2020.05.12 189 2
338 시즌6 손이 문제일까, 마음이 문제일까?를 읽고2 떠나 2022.02.10 727 2
337 시즌6 젖은 손 혹은 젖은 마음의 위로를 받은 듯 합...3 kimmi 2022.02.08 774 2
336 시즌6 눈물 나는 맛 = 추억맛!4 산골아이 2022.01.11 155 2
335 시즌1 저는 고양이가 아닌, 닭을 구해준 경험이 있습...3 하얀연필 2020.03.10 178 2
334 시즌6 간식, 눈물나는 맛!!4 영배알고싶다 2022.01.11 82 2
333 시즌6 누군가의 공손한 위로6 떠나 2022.01.11 88 2
332 시즌1 500원에 빵 터졌어요 ㅋㅋㅋ1 엘리시아 2020.05.08 239 2
331 시즌3 명일 조천 2월의 서신 배송을 시작할 예정이외다 Shelley 2021.02.07 535 2
330 시즌2 후시딘에서 진화인류학이라!!😅😆1 수지 2020.08.10 157 2
329 시즌1 오늘은 혹시 편지 안오나요...?4 Ryeon 2020.04.21 184 2
328 시즌5 김복희 시인님과 나의 소망이 이루어 지기를2 이수아 2021.11.22 1045 2
327 시즌1 ㅋㅋㅋ 왠지 사람 심리의 정곡을 찌르는 글이에요 지현 2020.05.15 445 2
이전 1 2 3 4 5 6 7 8 9 10 ... 14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