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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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

<언젠가, 작가>를 읽기 전에

무아2020.03.24 13:26조회 수 167추천 수 4댓글 1

<언젠가, 고양이>를 매일 읽으며 출근길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문득 나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어제 써 보았습니다.

유혹을 뿌리치고 차곡차곡 모았던 글들을 드디어 오늘 읽었어요. 와... 역시.. 

그래도 이 곳에 제 이야기를 나눔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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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대체 여길 왜 온 거야! 잘 살고 있는데 왜 온 게야!” 

“훔… 요리… 요리…  어때요?” 

“요리는 무슨!” 

할아버지는 길쭉하고 거친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앞뒤로 뒤집으며 그 두께를 가늠한다. 

“종가집 맏며느리들 손 봐봐! 얼마나 오동통하고 두툼한데. 입도 짧은데다가 손도 영 틀렸어. 

사주가 원체 좋은데 마흔부터 더 좋을 거야.. 글 쓰면 더 좋고… 그냥 지금처럼 살면 되.. 넌 안와도 되.. 그 옆 처자는 자주 오고.. “  

한 자리에서 20년 넘게 망하지 않은 철학관, 신내림 없이 통계학적 분석으로 고민 상담을 한다는 역술가는 막연한 망상을 안겨주었다. 

 

‘인생 반백살까지는 방황해도 괜찮아!’ 라며 방랑을 만끽하던 서른, 수천 킬로를 걸으며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이 길을 책으로 쓸 거야. 그 책을 너에게도 보내줄게. 유명해지면 그 책을 가지고 꼭 다시 올게.’ 

스페인 산골 사과 농장 할머니는 못 알아 들으신 것 같았지만 밝게 웃으며 꽉 안아주셨다.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되겠다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는 글을 쓸 거야! 책을 만들거야! 독립 출판을 할거야!’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었다. 왜일까.. 어떤 작가처럼 학창 시절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나?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나? 작가에 대한 동경이나 허상이 있었나? 글 쓰기에 재능이 있었나? 

 

글 쓰기는 나에게 기억 저장과 동시에 왜곡의 도구였다. 흘러가는 순간의 감정들을 붙잡고 싶었다. 사진은 내 맘같이 되지 않았다. 내 눈은 감상이 투과되어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카메라는 지나치게 솔직했다. 그래서인지 길을 걷는 내내 기록에 더 집착했다. 카메라는 귀찮고 무거웠고, 작은 공책 한 권과 연필은 꺼내기 쉽고 가벼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내내 쟝 폴의 들숨과 날숨이 마치 젓가락 행진곡 같았다. 53km를 걸은 그 날의 목적지, 마을 어귀가 드디어 보인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다가오는 나를 보며 팔을 벌린다. 서로가 배낭을 세차게 두드린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혼자 글을 쓰며 이 장면을 떠올리고 또 떠올린다. 저녁 내내 알 수 없는 짜릿함으로 열기가 쉬이 식지 않았다. 

반면에 유리한 기억의 성을 견고히 하고 싶었다. 그 성벽을 하나 하나 쌓으며 마음을 치유하 곤 했다. 일기장 속 그녀는 늘 비련의 여주인공이고, 그는 철저하게 나쁜 놈이었다. 그 글을 되뇌이고 되뇌이다가 어떤 날,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했다.물론 그는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끈질기게 이유를 묻는 누군가에게 간혹 일부를 읽어준 적도 있었다. ‘넌 나를 탐낼 자격도 없는 놈이야!’ 돌이켜 보면, 연애사 말고도 감정이나 상황을 극대화하여 글 쓰는 일이 그냥 재미가 있었다. 

마흔이 된 지금, 방 한 켠에 먼지 쌓인 박스가 있다. 정말 내가 쓴 게 맞아?하고 놀라는 공책들과 몇몇 녹음 테이프가 있다. 잊는 게 싫어서 썼는데 그렇게 방치하였다. 독자가 읽을 만한 글은 사실 상, 쓴 적이 없다. 그러니 작가를 갈망할 수도 꿈 꾼 적도 없을 수 밖에. 

 

작가란, 글이라는 형식을 빌어 자기 생각을 읽는 이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어떤 작가는 화두를 던질 뿐, 동의를 요구하거나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반면에 또 다른 작가는 자신의 의도대로 따라와 주어 명확한 메시지가 읽히기를 바라기도 한다. 간혹 다 상관 없이 전달 자체가 중지 되기도 한다. 서희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던 나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읽다가 포기하였다. 인물 간 관계도를 그리다 그리다 열여섯 소녀는 좌절했다. 덕분에 작가를 대단한 사람이라 여기게 되었다. 세상을 촘촘히 보고, 인물을 만들어 내고, 특징을 입히고, 그들 간의 관계를 설정하며, 이를 토대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

 

퇴사를 통보한 나에게 한대표는 술을 한 잔 하자고 하였다.

영화 ‘몽상가들’을 몹시 좋아했던 그는 옹색한 변을 짧막하게 마치고 질문을 던졌다. 

“함은 앞으로 뭘 하고 싶어? 아니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나의 즉답 속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뭔가 잘 꾸며내는 사람…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뭔가 꾸미는 일, 기획을 하고 있을 거에요. 그게 서비스든, 여행이든, 뭐든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같이 일하는 이들은 여전히 나를 기획자라 말한다. 마켓, 트렌드, 서비스를 세세히 보고, 데이터 요소를 정의 및 구성하여 그들 간의 관계를 설정하며, 이를 토대로 UX/UI를 만들어내는 사람, 작가 ‘처럼’이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댓글 1
  • 2020.3.24 21:33

    선생,

     

    나 셸리 목숨 아홉 개를 거쳐온 까닭에 기억이 언제나 은전처럼 맑지는 않으나, 그대의 말을 듣고 떠오른 이가 있소. 분명한 것 하나는 내 지금 떠올린 작가가 쓴 한 편의 글이 그 제목에 《메두사》란 말이 있었다는 것이오.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을 다소 부정확하게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소—〈그대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 글을 쓰라!〉

     

    선생의 글에 대한 감상은 이 회고함으로 갈음하오.

     

    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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