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시즌1

뒤늦게 찾은

시안2020.03.17 14:16조회 수 144추천 수 4댓글 2

피아노 체르니 40번 중간까지 배우고 있었다. 이사를 왔고 새로운 정착지에서 마저 진도를 마무리 짓고 싶어 피아노 학원을 알아 보았으나 연주법이 자신과 달라 스타일을 맞추기 어렵고 이미 베어버린 습관을 고치기가 어렵다며 거절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하루에 4시간을 꾸준히 투자해왔기에 그 시간의 공백이 허전했다. 

그 이전까지 나는 줄곧 책 읽기를 좋아했고 읽지 않더라도 한달에 책을 4권은 사서 놓아두어야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그냥 그랬다. 읽지 못하게 되어도 책이 놓여진 모습을 보는고 있는건 나를 꽤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소장만으로도 기쁘고 읽으면 더 즐겁고!

 

우연히 서예학원 전단지를 남자가 나에게 주었고 난 등록했다. 내가 배워온 취미들은 피아노를 제외하고 1년쯤 배우면 싫증이 났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처음엔 먹만 갈다가 선긋기를 배우는데 일명 가래떡을 긋는 것이다. 일정한 굵기와 선의 처음과 끝의 모양이 같도록 하는 운필법을 익힌다. 내가 그으면 왜 같은 먹물로 긋는데 먹물의 번짐이 다르고 붓은 꼬인단말인가...왜..왜!

그런 현상이 언제나 이어졌다. 물조절을 하면서 먹의 농도를 바꾸고 붓을 아무리 가지런히 다듬어도 나는 계속 불편한 모양이 만들어 지고 붓은 꼬였다. 어느 날 문득 이 한 가닥 한 가닥이 모여 겨우 14mm의 붓일진데 이 붓을 다루지 못하는게 한심하게 느껴지고 이상한 승부욕이 불끈 솟았다. 기필코 이겨보리라! 고작 너에게 항복하고 포기하는 일은 하지 않을거라는 작정. 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있었다. 어디서 이상한 글씨를 보면 내게 물어왔다. 이게 무슨 글씨냐고.너는 알지? 내가 모를거라는 가정은 그 질문에 전혀 그림자도 없었다. 수년을 배우고 있는데도 배울수록 어려운 이것은 도대체 무엇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알아봐야했다. '몰라'라는 대답을 할 수 없었고 그 말은 내가 이걸 배우고 있는 이유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먹향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하루에 4시간 투자로는 턱없는 이 붓놀이가 너무 재미있다. 밥먹을래 글씨쓸래? 라고 물으면 하루종일 이것만 하다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늦바람이 난 것이다.

맛있는 글밥을 찾아 화선지에 옮겨 쓰고 먹그림으로 옷을 입히는 생계형 작가. 행간의 글들 사이에서 놀 생각으로 설레는 중
글 보고 싶어요 (by 버들잎) "적당한 거리" = "공존" (by 화니빠)
댓글 2
  • 2020.3.17 15:58

    어릴 때 다녔던 서예학원이 생각나네요. 먹 가는 소리, 먹물 냄새, 스윽스윽 하며 화선지를 지나가는 붓 발자국 소리. 시안님 글을 읽고 있으니 먹물 냄새가 어디서 나는 듯 합니다.

  • @월영동김산자
    시안글쓴이
    2020.3.17 17:08

    좋은 추억 가지고 계시네요~^^ 맞아요. 스릉스릉 먹 갈리는 소리..붓 발자국소리..참 좋아요.제 방문을 열면 사람보다 먼저 마중 나온 먹향이 아주 좋아죽겠어요.

댓글 달기

셸리네 이야기들

소중한 독자와 작가, 북크루의 공간입니다. 궁금 한 조각, 아이디어 한 덩이, 감동 한 동이... 모두 환영합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시즌2 핫펠트 작가의 소설, 셸리를 통해 최초 발표1 아돌 2021.02.04 2577 5
127 시즌1 오다 안 오니 넘 허전하네요..2 말다 2020.03.30 129 4
126 시즌1 글 보고 싶어요2 버들잎 2020.03.03 227 0
시즌1 뒤늦게 찾은2 시안 2020.03.17 144 4
124 시즌1 "적당한 거리" = "공존"2 화니빠 2020.03.13 197 6
123 시즌1 저도 월, 화 편지 부탁드립니다.2 모켄트 2020.04.22 404 2
122 시즌1 두리번 두리번2 시안 2020.04.02 173 6
121 시즌1 머리맡에 고양이2 시안 2020.03.09 226 2
120 시즌1 남궁작가님의 뿌팟퐁커리를 읽고2 맹이 2020.04.13 193 5
119 시즌1 셸리올시다2 Shelley 2020.04.03 219 3
118 시즌1 특별한 사랑2 감람 2020.05.04 230 2
117 시즌1 두려움이 없는 고양이의 눈빛이 얼마나 순한지...2 보물선 2020.03.13 220 7
116 시즌1 구독신청 후 피드백2 deerhunter 2020.03.06 162 0
115 시즌1 셸리외 함께 차마시며 수다 떨고 싶어요.2 감람 2020.04.30 301 6
114 시즌1 오늘 이은정 작가님 글 재미있네요 ㅋㅋ2 봉봉쓰:) 2020.03.13 229 5
113 시즌1 화요일 메일이 안와요..2 샛노랑 2020.03.10 123 0
112 시즌1 매일 같은 메일이 2통이 전달되네요. ㅎㅎ2 해와 2020.03.12 207 2
111 시즌1 ㅋㅋㅋ2 정인한 2020.04.22 145 3
110 시즌1 와씨!!!2 해와 2020.03.24 140 5
109 시즌1 언제나 내 옆의 고양이2 시안 2020.03.16 171 5
108 시즌1 친애하는2 정인한 2020.04.22 235 2
107 시즌1 다시 올립니다2 jjg 2020.03.09 124 0
106 시즌1 이은정 작가님의 (이번 시즌) 마지막 글이라니...2 JaneEyre 2020.05.18 585 3
105 시즌1 5월 서신은 언제 부터 인가요?2 냐옹이풀 2020.05.06 431 3
104 시즌1 당신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2 우렁각시 2020.04.12 194 5
103 시즌1 별에서 온 그대 아니고 셸리2 빨간구두 2020.05.18 590 3
102 시즌1 마실 수 없는 커피2 빨간구두 2020.05.13 449 2
101 시즌1 내가 갖고 있던 남궁 작가님의 이미지2 월영동김산자 2020.03.26 235 7
100 시즌1 지금 안하면 평생 후회 할 일2 화니 2020.04.18 249 5
99 시즌1 헉!2 해와 2020.03.23 138 5
98 시즌1 메일링 신청시 문제점2 라라 2020.05.01 143 0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