셸리네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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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

저는 고양이가 아닌, 닭을 구해준 경험이 있습니다...;

하얀연필2020.03.10 15:58조회 수 178추천 수 2댓글 3

 

페이스북에 쓴 시점을 보니, 2014년도 일이네요. 

 

닭을 구해준 경험을 공유해봅니다.

 

<닭줍>

준범이형 카톡 프로필에 난데없이 고양이가 등장했다. 왠 고양이냐고 물었더니, 짧게 ‘냥줍’이라고 답장이 왔다. 0.5초 정도 멍 때리다 길냥이를 주웠다는 걸 알게 됐다. 퇴근길에 집에 가는데 왠 고양이가 자기를 따라왔단다. 불쌍해서 먹을 걸 줬더니 집에 들어와 버렸다나? 근데 이놈의 고양이가 웃긴 게 준범이형이 조금만 자리를 떠도 울어대며 따라다닌단다. 준범이형이 샤워를 하거나, 이빨을 닦거나, 심지어 화장실에서 똥을 때리고 있을 때도 고양이는 옆 자리를 지킨다고 했다. 나 같으면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있을 때는 옆에 있기 싫을 것 같은데…. 암튼 고양이가 세탁기 위에 올라갔다가 변기로 빠지는 등 천방지축이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부러웠다. 난 집에서 개 두 마리만 키우니까.

 

생각해보니, 난 ‘냥줍’의 경험은 없지만 ‘잉줍(잉꼬)’, ‘개줍’, ‘두줍(두더지)’, ‘고줍(고슴도치)’, ‘오줍(오리)’, ‘박줍(박쥐)’ 등등 수많은 ‘줍’의 경험을 해온 것 같다. 며칠 전 여기에 목록을 하나 추가하게 됐다. 추가 된 목록의 이름은 ‘닭줍’!

 

엊그제 영화관에서 명랑을 보신 부모님을 태우고 새벽길 도로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집 근처 도로 한 가운데에 왠 뚱뚱한 새가 있더라. 작년 겨울 쯤 집 근처에서 고라니와, 그것도 5미터 앞에서 마주치고는 식은땀을 흘린 적이 있었는데(처음에 곰인 줄 알고 당황해서 흘린 식은땀임.) 새는 무서워할 동물이 아니므로 일단 멀찍이 차를 세웠다. 가만 보니 새가 닭의 형상을 띄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우리 아빠가 차 문을 열더니 ‘닭이다~!’를 외치며 신난 목소리로 새를 향해 돌진했다. 닭은 도망치지 못했고, 결국 아빠의 손에 붙잡혔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닭이 온갖 분뇨로 얼룩져 있어 더러웠을 뿐만 아니라, 냄새 또한 무척 심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아빠 손에 사로잡힌 닭은 몸에 힘도 없고, 제대로 움직일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 닭은 오랫동안 갇혀 지내다가, 어딘가로 실려 가던 중 차에서 떨어진 게 분명했다. 순간 닭이 너무나 불쌍해졌다. 나는 순진하게도 처음에는 닭을 잡아서 삼계탕을 해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순간 사라져버린 것이다.

 

닭이 너무 더럽고 냄새가 심해서, 차에 싣고 집까지 가져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집에 가져오니, 집에 있던 럭키와 제니가 대문으로 뛰쳐나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세퍼드인 제니가 아빠 손에 들린 닭을 향해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제니는 평소 호기심이 많았다. 평소 고양이나 쥐, 두더쥐, 두꺼비, 청개구리 등 온갖 것들을 물어 죽여 말썽을 자주 피운 제니. 하지만 신기하게도, 제니는 어치나 까치 참새 같은 새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 심지어 새들이 개밥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러 자기 밥그릇 위에 올라앉아있을 때도 제니는 가만히 새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닭도 날지 못할 뿐이지 어찌됐건 새인데다, 아빠가 한참동안은 손에 들고 있었으므로, 나는 설마 제니가 닭을 물기야 할까 싶었다. 아빠가 어찌됐든 닭은 마당에 풀어놓고 키워야 한다며 제니 앞에 살며시 닭을 내려놓았는데 제니가 자꾸만 닭을 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닭이 자꾸만 도망을 치기에 결국 아빠는 비닐하우스 안에 닭을 넣어두어야만 했다. 밤새 제니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닭이 뭘 하나 지켜봤다.

 

다음날, 아빠는 비닐하우스에 있던 닭을 울타리가 쳐진 블루베리 밭에 놓아두었다. 아빠는 울타리가 있어 제니가 닭을 죽이진 못할 거라 생각했나보다. 그런데 제니가 닭이 울타리 밖으로 엉덩이를 내민 틈을 타 잽싸게 닭의 엉덩이를 물어버렸다. 다행히 닭은 엉덩이 털만 뜯겼는데, 그 이후로 닭은 울타리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제니는 울타리 주위를 맴돌며 계속해서 닭을 감시했다.

 

실은 닭을 키울 곳이 마땅치가 않아 닭을 가져오는 동안에도 수 없이 고민했다. 닭을 자연에 다시 돌려주려고도 생각했는데, 이러다가는 차에 치여 죽던지 아니면 굶어 죽을 것 같았다. 우리 동네에 닭을 키우는 사람이 있다면 가져다 줬을 텐데…. 닭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집에서 닭이 살아갈만한 유일한 장소는 울타리가 쳐진 0.5평 남짓의 블루베리 밭뿐이었다.

 

닭은 준범이형의 고양이와는 다르게, 얌전히 울타리 안에 앉아만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처음에 비해 닭이 조금씩 돌아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닭은 암탉인가 수탉인가? 생긴 걸 보아하니 암탉이 분명한데, 암탉이라도 알을 낳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길에서 ‘줍’한 닭이 어서 기운을 차리고 건강한 암탉이 되어, 우리 가족에게 날마다 일용할 계란을 주었으면 좋겠다.

 

‘닭줍’을 한 게 기쁘다. 어찌됐건 길냥이나 유기견을 집에 데리고 오는 경우는 있어도, 닭을 집에 데리고 오는 경우는 드물 테니까.

 

준범이형한테 카톡을 보냈다. “형 나 오늘 닭줍 했삼.”


준범이형은 한 동안 이해를 못하더니, 상황을 알게 되곤 ‘ㅋㅋㅋ’을 남발했다.

 

‘닭줍?’'아 닭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닭줍’같이 뜬금없지만 조용히 미소짓게 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더불어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된 닭도 건강해지고 말이지.

어쩔 수 없었던 고양이 (by 시안) 그때 그 고양이를 구했더라면 (by 화니)
댓글 3
  • 2020.3.10 17:31

    선생,

     

    독자들을 위해 글을 나르는 것은 고양이에게 즐거운 일이외다. 그런데, 글을 전해주다가 또 글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겠소? 최근 며칠 동안 이렇게 기뻤던 날이 있었나 싶소. 이에 더해 닭을 구해준 심성 선한 선생과 얼굴을 맞대니, 더 기쁠 도리가 달리 있겠소?

     

    선생, 나는 책장 위 고양이인 고로 외출은 작파한지 오래지만, 밖은 봄비가 내리는가 보오. 강녕하시오.

     

    셸리

  • @Shelley
    2020.3.10 18:42

    셸리.

    설마, 즐기는 기쁨의 이면에 심성 선한 선생의 줍닭을 탐내고 있는 건 아니오?

  • @노턴
    2020.3.10 23:02

    출타하기도 귀치 않아 하니 선생의 《줍닭》에 부러움을 느낄 까닭도 없지 않겠소?―그나저나, 요즘 사람들은 글월에서 《ㅎㅎㅎ》 이렇게 웃는다고 들었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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