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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글쓰기 - 이현진(아도르): '쓰기'에만 몰두하지 않고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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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아도르) 작가

 

  오늘도 우리는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나름 열심히 글을 써보려는 사람이라면 십 분쯤, 새하얀 모니터를 노려보게 되죠. 물론 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인스타도 페이스북도 들락거려요. 30분이 빠르게 갑니다.

 

  이러면 안 되지. 다시 글쓰기로 돌아옵니다. 여전히 화면은 백지입니다.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글쓰기 강연 티켓팅을 해봅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가서 열심히 강연을 듣습니다. 오가는 시간까지 서너 시간은 좋이 썼습니다.

 

  늦은 밤 다시 노트북을 펼칩니다. 커피는 두 잔째, 여전히 글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썼다 지우다 보니 결국 단 한 글자도 남아 있는 게 없네요. 아, 깨닫고 맙니다. 나는 글을 쓰는 테크닉을 모르기에 앞서, 도대체 뭘 써야 할지 떠오를 수가 없다는 것을요. 글 쓰는 법은 어떻게든 배울 수 있는데, 도대체 뭘 쓸지는 어떻게 떠올릴 수 있는 거죠?

 

 

 

"문어다리"를 걸치며 살아가는 이현진 작가

 

  이현진(아도르) 작가의 말이 여러분께 답이 되어드릴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싹싹하진 않아도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로 브런치북 6회 대상을 탄 사람입니다. 또한 이현진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인 동시에 회사원, 디자이너, 캘리그래피 작가, 스토리텔러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프리랜서가 되어 “문어다리”를 걸치며 살아가다 보니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때 이현진 작가는 단언합니다. “‘쓰기’에만 몰두하지 않고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글이 쉽게 써지지 않아서, 어떡하면 글을 쓸 수 있게 될지 배우기 위해 왔는데 쓰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니요?

 

 

 

'답안'이 아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쓰기

 

  이현진 작가는 강연 초입의 짧은 자기소개 이후 우치다 다쓰루의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그리고 은유의 『다가오는 말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글쓰기는 이러합니다. 우리는 글쓰기를 할 때 채점의 대상이 되는 ‘답안’을 써내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내면에 변화를 야기할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미리 머릿속으로 생각해둔 것을 그대로 ‘프린타아웃’하는 방식으로 좋은 글이 작성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글을 쓰는 과정 내에서 내가 아는 것,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발견합니다. 

 

  다른 두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지론을 경유해, 이현진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목표는 ‘잘 쓴’ 글이 아니라, ‘좋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글이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글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글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가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과 무슨 상관일까요? 이 지점에서 이현진 작가가 마침내 답을 내놓습니다.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 재산을 꺼내 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사유가 필요합니다.
 

 

 

버텨내고, 살아가고, 질문하고, 사유하기

 

  이현진 작가가 말한 “‘쓰기’에만 몰두하지 않고 살아가는 시간”이란 곧 “버텨내고, 살아가고, 질문하고, 사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나는 내 재산을 얻을 수 있으며, 이 재산을 꺼내씀으로써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즉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됩니다. 거꾸로 말해 쓰지 않는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열심히, 노트북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완벽한 글을 ‘프린트아웃’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책을 내게 된 이현진 작가

 

  이현진 작가는 좋은 글이 되는 자신만의 사유, 자신만의 재산에 관한 내용을 더 상술하기 위해 퇴사를 전후해 글을 쓰고 그 글이 출간까지 이어졌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녀가 보내야 했던 그 시간은 “열받은 마음을 글로 쓰며 식혔”던 시간,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준비하고 써내려가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현진 작가는 “하고싶어 죽겠는 말이 나의 길이 된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자신을 세상에 던지는 글쓰기

 

  그녀는 이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가 쓰는 사람에게 글쓰기가 지니는 의미를 말해줍니다. 이현진 작가가 정리한 삼단논법은 이러했습니다. 먼저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한편 “책을 출간한다는 건 세상에 무언가를 던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결국 글을 쓰는 건 자신을 세상에 던지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 이현진 작가가 스스로 발견한 글쓰기의 의미였습니다.

 

 

 

'잘' 쓰지 말자. 차라리 '못' 쓰자.


  강연이 끝날 무렵, 이현진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쓰지 말라고요. 차라리 못 쓰라고요. ‘잘’ 쓰는 대신, “내 마음이 위로되는 글”, “누군가를 웃게 하는 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을 쓰라고요. 이현진 작가가 강연을 마치자, 참여해주신 분들의 박수 소리 속에서 저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글쓰기를 배우러 왔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위로를 받은 듯한, 왠지 이상하게 좋은 기분이었으니까요.

 

  '일하면서 글쓰기'는 매주 목요일 계속되었습니다. 이현진 작가로부터 이어받아 다음 강연을 진행해준 작가는 신정철 작가입니다.

 

 

 

 

이현진 작가가 전하는 글쓰기 팁:

  1. '잘' 쓰려 하지 마라. 대신 나만의 이야기를 쓴다.
  2. 매일매일 '못' 쓰는 글쓰기를 하자. '잘' 쓰지 못해도 좋으니 일단 쓰자.
  3. 출근길에 만났던 카페 알바생 이야기든, 점심 때마다 먹는 메뉴에 대해서든 그냥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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